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에버랜드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것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 회장의 등기이사 사직은 집단소송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자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재계의 합의사항인 '5+3 원칙'을 무시한 것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형식적인 등기이사 제도를 실질적으로 환원하기 위한 것으로 그룹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만 맡아 내실을 기하겠다는 뜻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 문제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회사의 대주주 또는 계열주가 반드시 등기이사가 돼야 한다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의 경우 대주주나 계열주가 등기이사가 됐다고 해서 논쟁을 벌인 적은 없다. 그런데도 유독 이 회장의 등기이사 사직을 놓고 시민단체들이 벌떼처럼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여연대는 고작 한 달 전 이와 유사한 문제를 놓고 전혀 다른 논리의 성명을 낸 적이 있다.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의 과도한 등기이사 겸직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저해할 소지가 있고 이해상충의 문제를 낳는다."(3월2일 참여연대 논평) 흡사 전혀 입장이 다른 단체가 발표한 논평이라고 할 만큼 등기이사에 대한 참여연대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한마디로 기업 CEO가 여러 회사 이사를 맡을 경우 개별회사의 이사직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다는 논리였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 회장의 등기이사직 사임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도 자유로운 자본주의 국가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사로 남건 아니건 그것은 기업인들의 '자유 생각'이라는 설명이다. 참여연대가 유독 이건희 회장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이태명 산업부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