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 < 문화부장ㆍ부국장 > 방송위원회가 위성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의 지상파 방송 재송신 여부를 발표한 지난 19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지역방송협의회 관계자 1백여명이 몰려들어 격앙된 목소리로 결사반대 의사를 천명하며 험악한 상황이 연출됐다. 게다가 방송위원회 조직과 직무의 위헌성 등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한 정보통신부 내부문건까지 나돌면서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해졌다. 방송위는 두세시간 동안 문안 자구 수정을 거듭한 끝에 겨우 '재송신 허용'을 발표했다. 언론 노조는 지상파가 무료 보편적 서비스여야 하지만 위성DMB 사업자인 TU미디어는 월 1만3천원의 이용료를 받기 때문에 재송신 허용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TU미디어는 원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지상파 방송을 이동 중에도 볼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게 뭐가 나쁘냐고 맞서고 있다. 이처럼 지상파 재전송 여부를 놓고 양측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방송프로그램,즉 양질의 콘텐츠가 부족한 탓이다. 지상파만큼 강력하고 흡인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한 만큼 그것의 확보 여부에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방송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개발되는 데 반해 거기에 담아 내보낼 프로그램 제작은 턱없이 부족한 방송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채널수가 워낙 많다 보니 방송사업자로선 내용이나 품질은 고사하고 시간을 채울 만한 프로그램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 방송시장 현황을 한번 들여다보자.우선 KBS MBC SBS EBS 등 지상파 방송의 시청 점유율은 60% 정도(2004년), 광고 매출액은 2조7천5백여억원(2003년)이다. 또 전국 1천2백여만 가구가 가입돼 있는 케이블TV의 채널수는 98개나 된다. 케이블TV 시청 점유율은 38% 정도이다. 특히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서비스되는 방송채널 사업자수는 무려 1백60개(비디오 1백개,오디오 60개)에 이른다. 여기에 위성DMB 사업자인 TU미디어가 내달 초 비디오 7개 오디오 20개 채널을 가동,서비스에 들어간다. 지난달 선정된 KBS MBC SBS 한국DMB 등 6개 지상파DMB 사업자들도 오는 7월께 방송을 시작할 전망이다.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보는 IPTV를 제외해도 2백개가 넘는 채널이 우리에게 제공되는 셈이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방송의 무차별 공격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위성 및 지상파DMB 서비스가 본격화될 경우 콘텐츠 확보 경쟁은 더 격화될 수밖에 없다. 케이블TV와 스카이라이프 간의 해묵은 영역 다툼이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위성과 지상파DMB까지 가세하게 되는 꼴이다. 한정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방송사업자들끼리 서로 치고 받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문제는 소액의 제작비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려면 자극적인 프로그램 제작 경쟁이 불붙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방송산업 빅뱅은 이제 시작이다. 막강한 위력을 지닌 전파가 지금 우리 사회의 통제권을 벗어나 요동치려 하고 있다. 크게 보면 방송계 전체가 기술 발전을 따라잡지 못해 휘둘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동안 방송위 정통부를 포함한 정책 입안자들이 방송법 개정 등을 통해 방송산업을 이끌어가는 데 실패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완급 조절에 나서야 한다. 그 핵심은 양질의 콘텐츠 공급이다.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