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외교는 독립선언, 경제는 의존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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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현 < 명지대 무역학과 교수 >
연초 회복 조짐을 보이던 경제가 최근 주춤거리는 모습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기대지표는 부풀려져 발표되는데 실제 지표는 전혀 이를 못따라가는 괴리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환율 유가 등 대외변수에서 악재돌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IMF사태 이후 우리 경제는 대외변수에 취약해졌다. 우리 증시에 투입된 1백80조원 정도의 외국자금은 말할 것도 없고 작년도 수출 약 2천5백억달러, 수입 약 2천2백억달러를 감안하더라도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을 포함한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날로 커지고 있다. 단적인 예가 원유이다. 우리나라가 한해 사용하는 원유는 8억배럴이 넘는다. 이 많은 원유를 수입하는 데만 3백억달러가 넘는 돈이 든다. 원유를 수입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달러를 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작년도 국내총생산(GDP) 6천8백억달러를 자랑하지만 수출과 수입을 합친 대외교역량의 비중이 GDP 대비 70%라는 사실을 보면 우리의 위치가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은 IMF사태 이후 백악관 회의 때 한국의 모라토리엄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고 전해진다. 물론 국무와 국방장관이 방위력 약화를 이유로 반대함으로써 2백10억달러의 추가자금 지원이 결정되기는 했지만, 그가 한국에 대해 부정적이 된 것은 훨씬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재경부 장관과의 면담이 취소된 탓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약속을 한 차례 변경한 그의 잘못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그 해프닝은 태평양을 건너 온 손님과의 약간의 갈등에서 그치지 않고 훗날 엄청난 태풍이 되어 되돌아올 뻔했던 것이다.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폭풍을 몰고 올수도 있다는 카오스 이론이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탁상이론만이 아닐 수도 있다.
작년 프랑스에 갔을 때 밤에 본 파리의 상징 에펠탑은 그 옛날 우리나라의 푸줏간 같은 시뻘건 조명으로 장식돼 있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방문했고 중국인들은 빨간 색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샹젤리제를 온통 중국 국기로 치장해 놓는 것도 모자라서였는지 말이다.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미국과 대립하던 강한 모습은 없었고 떼제베(고속전철)와 에어버스(항공기)를 팔기 위해서라면 파리의 상징을 푸줏간 조명으로 장식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장사꾼의 여유로움마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할 말을 하고 얼굴을 붉힐 때는 붉히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다. 국가적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이러한 조치에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그러나 한국 국민들 중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親美)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표현에서는 마치 친미가 국가이익에 해가 된다는 듯한 묘한 뉘앙스가 풍긴다. 1년에 2천5백억달러를 전세계에 수출하려면 세계 모든 나라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하고 특히 GDP가 10조달러가 넘고 전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나라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파는 물건을 사주는 나라, 혹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핵심부품이나 중간제품을 대주는 나라와의 관계가 나빠지면 우리 경제에 주름살이 질 수도 있다.
수많은 대외변수에 노출이 되다보면 위기상황이 닥칠 수도 있고 이 상황에서 우리를 지원할 능력이 있는 나라와의 관계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미국보다 더 친미적인 사람도 필요하다. 개인이 보험에 가입하듯 국가차원에서도 위기에 대비한 보험을 들어 놓아야 할 것 아닌가.
외교적 당당함을 추구하느라 국익을 훼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우리경제는 세계 10위권이라는 자부심만 내세우기에는 아직 취약하다. 급속히 진행되는 노령화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기 전에 국민소득 2만달러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외교정책을 포함한 국가전체의 역량과 자원을 성장동력의 제고와 확충에 올인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가 처한 경제현실을 철저하게 고려해 국익위주로 일관성 있게 외교정책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