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GM대우차 노사는 임금 12만5천원(기본급대비 11.01%)인상,타결축하금 1백50만원 지급,품질목표달성 격려금 1백만원 지급 등에 잠정 합의했으나 조합원 투표에서 거절당했다.“기대에 못미친다”는 노조원들의 반발때문이었다.결국 노조대표는 다시 회사측과 협상을 벌여 특별1호봉 승급 등을 추가로 따내 노조원들의 불만을 잠재워야 했다. 노동현장에 강경투쟁이 존재하는 데는 조합원들의 기대심리가 많이 작용한다. 조합원들은 회사측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내는 집행부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노조 지도부도 회사의 지불능력과 상관없이 과도한 요구를 하기 일쑤다. 그래야 노조원들로부터 인정받는 집행부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회사 경영사정을 감안한다며 임금동결을 주장했다가는 당장 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야 한다. 대기업 노조의 파업행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한국노동교육원의 이호창 교수는 "조합원들은 막무가내식 파업에 싫증을 느끼면서도 내 몫만 챙기면 괜찮다는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지도부는 과도한 요구안을 회사측에 제시하며 투쟁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노조원들의 이같은 기대심리는 파업찬반투표에서도 잘 나타난다. 협상이 결렬된 뒤 파업찬반투표를 실시하면 대부분 압도적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한다. 실제로 파업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파업'이란 무기를 손에 쥐고 있어야 회사측을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20일간 파업을 주도했던 울산 동부화학의 박재문 노조위원장은 "대부분 파업은 무리한 요구를 하다 관철시키지 못해 일어난다"며 "이는 조합원들의 기대심리가 커 집행부도 어쩔수 없이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회사 노조의 임금인상제시율은 지난 2001년 17%였으며 지금도 두자릿수 인상을 예사로 요구하고 있다. 물론 노동현장의 파업문화가 많이 변하면서 파업찬반투표를 실시하면 찬성률이 옛날보다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상태다. 협상이 진전되든,안되든 파업을 선언하는 것은 이러한 조합원들의 기대심리가 작용한 때문이다. 투쟁성이 강할수록 위원장에 당선되는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강성 노조위원장이 화끈한 전투력을 앞세워 조합원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노조지도부가 임금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면서 파업도 벌이지 않는다면 그 순간 어용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이상옥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은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지난 2001년 7월 민주노총 4시간 파업지침때 간부만 중심으로 파업에 동참했다가 강경파 세력들의 반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왜 전면파업에 나서지 않았느냐는 질책이다. 울산 LG화학의 한 관계자는 "노조위원장은 노조원들의 표를 먹고 살기 때문에 현장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어떤 간부들은 조합원들에게 강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강한 척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고응규 창원지방노동사무소 근로감독과장은 "현장의 기대심리는 회사의 지불능력을 뛰어넘기 때문에 지도부가 이를 조정해야 한다"며 "하지만 노동운동에 대한 확고한 방향이 정립되지 않은 집행부는 조합원 요구에 흔들리며 과도한 요구를 하기 일쑤인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어용노조로 몰린다"고 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