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물’시장을 놓고 정수기와 이온수기 업계가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수기 회사들이 최근 판매가 늘고 있는 이온수기를 겨냥, “이온수기를 잘못 이용하면 오히려 건강에 해를 입을 수 있다”며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이온수기 회사들은 ‘시장 잠식을 우려하는 악의적인 음모’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온수기의 건강효과 논란=환경부가 정한 먹는 물의 수소이온농도(pH) 기준은 5.8∼8.5. 중성(7)을 기준으로 약간의 산성 및 알칼리 성질을 용인하는 수준이다. 정수기 업체는 이 기준에 맞춘 제품을 환경부의 허가를 받아 생산한다. 반면 수돗물 등을 산성 또는 알칼리수로 만드는 이온수기에서 생성되는 알칼리 물의 pH는 9.0 이상으로 통상적인 먹는 물 기준에서 벗어난다. 이 때문에 이온수기는 의료기기로 분류돼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받아 제조된다. 현재의 다툼은 알칼리 물이 변비와 위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는 말이 소비자들 사이에 퍼지면서 이온수기를 정수기 대용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수기 업계는 "이온수기 회사들이 주장하는 알칼리수의 각종 질병치료 효과는 의학적으로 완전하게 검증된 사실이 아니다"며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반면 이온수기 업계에선 "변비,체지방 감소등에 효과가 있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술 더 떠 "먹는 물의 pH 기준을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6.5∼9.0)나 영국 음용수 기준(5.5∼9.5) 등을 참조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이온수기업체 하이텍홀딩스 이대영 과장)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신호상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이온수가 몸에 좋은 효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완전히 입증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소관 기관까지 다툼에 가세 환경부는 "이온수기 제품 전면에 '먹는 물로 적합하지 않다'는 문구를 명시해야 한다"는 정수기업계의 요구를 지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온수기 회사들은 "알칼리수 등도 사용 목적만 다를뿐 엄연히 먹는 물인 만큼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며 식약청과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최근 들어 기존 정수기에 이온수기 기능을 더한 복합제품이 속속 선보이면서 양측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복합기능 제품에 대한 생산 및 수입허가권의 경우 환경부와 식약청이 함께 관장키로 했지만 제품 표시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를 보지 못한 상황이다. 최용철 환경부 수도정책과장은 "제품 표시 등 먹는 물과 관련된 각종 정책은 국민건강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으로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현재로선 먹는 물의 pH 농도를 조정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 [ 정수기·이온수기 ] 대체로 일반적인 정수기는 수돗물을 인공삼투막 필터 등의 장치를 거치도록 해 세균과 중금속 등 각종 오염물질을 제거한다. 물 속의 미네랄까지 걸러내기 때문에 여과된 물의 pH농도는 6 수준이다. 이에 반해 이온수기는 수돗물의 불순물을 걸러낸 뒤 전기분해를 통해 산성수 또는 알칼리수를 만들어낸다. 일반적인 이온수의 pH는 먹는 물 기준(5.8∼8.5)보다 높거나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