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환율쇼크'] (下) 원-엔 환율이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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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7년 반만에 세자릿수에 진입했지만 국내 기업들은 원·엔 환율 하락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기업들과 세계시장에서 경합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은 지난 7일 9백31원71전으로 지난 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소폭 오름세를 보였으나 최근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연초와 비교할 때 하락 속도도 원·달러 환율보다 두배가량 빠르다.
원·엔 환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은 올들어 원화는 미 달러화에 대해 평가절상된 반면 엔화는 평가절하됐기 때문이다.
원화의 경우 국내 수출업체들이 지속적으로 달러를 내다 팔아 주요국 통화 중 나홀로 절상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은 이에 따라 △원가 절감 △투자 우선순위 조정 △유로화 결제비율 확대 △외화예금 및 매출채권 조정 등 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중공업 삼성물산 등 삼성 계열사들은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성 향상운동을 벌이고 외화표시 자산을 축소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로화 비중을 확대하는 등 통화 포트폴리오 다변화에도 나서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환율이 더 떨어질 경우 올해 사업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보고 '비상경영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본사 각 사업부와 전세계 70여개 해외 법인 등에서 수립한 원가 절감 및 투자 순위 조정 계획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사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금융관리위원회'를 통해 외환시장 모니터링과 헤징전략도 짜고 있다.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그동안 추진해온 인도 브라질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 글로벌 생산거점 다원화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유로화 결제 비율을 늘리고 외화 수입 및 지출 시기를 조정하는 등 환리스크 증폭에 대한 시나리오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며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품원가를 낮추는 데도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북미시장 등 해외에서 일본산 제품과 치열한 시장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자동차업계도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자동차의 경우 미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에서 일본산 제품과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원화 강세에 따른 피해가 크다"며 "잘못하면 제조업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반도체 가전 정보통신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국내 주요 수출품목 50개 가운데 30개가 일본과 경쟁 중이기 때문에 원·엔 환율 하락으로 국내 수출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특히 "일본으로부터의 자본재 및 부품 수입이 급격하게 늘어나 국내 부품업체들이 고사하고 대일 의존도가 더욱 심화되는 부작용도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원.엔 환율 하락이 국내 경제에 주는 타격이 과거보다는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이 원.엔 환율 하락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진우 농협 금융공학실장은 "과거와 달리 지금 한국은 수출에서 일본보다는 중국과 부딪치는 부분이 많다"며 "외환딜러들도 원.엔에 목을 매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오히려 원.엔 환율이 낮아지면 일본으로부터의 자본재 수입 가격이 하락하고 엔화 대출을 쓰는 업체들은 이자비용이 줄어드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건호.김동윤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