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세자릿 수 환율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연초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곤두박질 칠 때도 상당수의 기업들은 ‘1달러=1천원’선이 쉽게 깨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워낙 하락폭이 컸던 데다 외환당국의 방어 의지에 어느 정도 신뢰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상의 전 단계로 금리 인상을 시사하고 있고 한국은행의 달러화 매입 여력도 약화되면서 주요 기업들은 네자릿수 환율 유지를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27일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본사 임원 및 그룹장 등 3백여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세미나에서 "7년 반 만에 환율이 세자릿수로 떨어지는 등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는 이미 예측했던 것"이라며 "환율은 더 이상 (경영실적 악화의) 핑계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환율이 9백50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준비해야 한다"며 "미리 준비한 경영 시나리오와 '독한 자세'로 환경을 극복해 나가자"고 독려했다. LG전자는 이에 따라 향후 임직원간 경영환경 정보를 공유하고 현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매진하자는 취지에서 분기별 세미나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사업계획 작성시 적용되는 기준 환율을 종전 달러당 1천60원에서 9백60원으로 하향 조정한 삼성 역시 환율 움직임에 관계없이 총력을 기울여 올해 경영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은 특히 환율 하락 추세가 향후 2~3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기술력 디자인 마케팅 등 비(非)가격 경쟁력 확충을 통해 '1달러=9백원' 시대에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경영체질을 구축하기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을 비롯한 많은 수출 기업들이 고환율의 혜택을 입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앞으로는 제품력과 마케팅을 앞세운 기업 본연의 경쟁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 비중이 매출의 70% 수준인 현대자동차도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수출 지역의 전략적인 재조정 등을 통해 환율 하락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해 나가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사업본부별로 위기관리 결의대회를 실시해 재고 감축을 서두르는 한편 유로화 결제 지역에 수출 물량을 우선 배정할 계획이다. 특히 다음달 준공되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중심으로 제품 현지화 전략을 추진해 기존 미국 수출 물량의 10% 이상을 유럽으로 돌릴 계획이다. 조일훈.이건호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