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평생 신경질환에 시달린 끝에 자살하면서 남편에게 유서를 남겼다. 보통의 부부생활 거부라는 황당한 조건으로 결혼, 아이를 갖지 않았던 건 6살 때부터 의붓오빠에게 못된 짓을 당한 나머지 몸에 대한 혐오감과 수치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유서는 이렇게 끝난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저는 지금 저 강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울프 같은 여성도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생을 불행 속에 살다 간 셈이다. 남편 레너드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야 겨우 그 끔찍한 고통을 알게 됐던 것이고. 울프가 간절한 소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성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피해자들은 겁이 나서 혹은 창피해서 자신이 겪은 일을 쉽사리 털어놓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성폭행 후유증으로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삶까지 송두리째 망가질 수 있다. 한나라당이 상습 성폭력범에 GPS(위성 위치 확인시스템)칩이 부착된 전자팔찌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성범죄가 5대 강력범죄중 두번째인데다 국내의 인구 대비 성폭행 발생 빈도가 세계 3위이고 25% 이상이 아동 성폭행, 재범률이 80%가 넘는 만큼 특단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범죄 처벌문제는 어디서나 간단하지 않거니와 국내의 법안 제정을 놓고서도 성폭력 근절을 위해 부득이하다는 찬성론과 현대판 주홍글씨라는 반대론이 맞선다. 성범죄자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나 격리를 주장하는 건 높은 재범 가능성 탓이다. 미국의 경우 한 사람의 소아 성폭행범이 1백50명 이상의 피해자를 만든다고 할 정도다. 때문에 영국과 미국의 일부 주에선 가석방된 성폭행범에게 'GPS 족쇄'를 채우고, 스위스에선 평생 격리하는 법안이 가결됐다고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가혹한 처우를 할 경우 인권침해는 물론 반사회적 인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적용대상 기준 착용기간 통제유형에 대한 연구는 물론 성범죄자 치료법 개발과 실시에도 힘쓸 일이다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