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은 내 전부였어.내 모든 걸 쏟아부었지.하지만 깨달았네.신은 핑계였을 뿐 이 전쟁의 목적은 영토와 재물이었어."


중세 십자군전쟁에 참가한 유럽의 한 장수가 내뱉는 대사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사극 액션 '킹덤 오브 헤븐'의 주제를 잘 집약하고 있다.


십자군전쟁은 성전이 아니라 욕망의 대리전이라는 해석이다.


현대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도 그것의 반복일까?


이 작품은 십자군전쟁을 현대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인간의 탐욕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뚜렷한 주제의식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올란도 블룸이 연기하는 발리안은 사제를 죽인 후 자신의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십자군전쟁에 뛰어든다.


그는 스콧 감독의 전작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처럼 비극적 운명에 내던져진다.


막시무스를 움직인 힘은 복수심이었지만, 발리안을 이끄는 추동력은 회개심이다.


죄책감은 그에게 정의로운 힘을 부여하고 참회는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로 찾아가는 겸허함을 일깨운다.


전쟁은 그에게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타협과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제를 죽인 발리안은 원죄를 지닌 인간의 원형이다.


그의 원정길은 참회와 구도의 길이다.


사제를 살해한 인물이 영웅으로 거듭나는 구성은 종교전쟁의 원인이 교리에 대한 집착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리들리 스콧은 생명이 숨쉬는 스펙터클을 창조할 줄 아는 감독이다.


카메라는 먼저 주인공의 정당함을 장시간에 걸쳐 보여준 뒤 그가 시련을 이겨내고 스크린 속 전장의 병사들로부터 지지를 받도록 유도한다.


이때 관객들은 전장의 병사들처럼 주인공과 같은 편이 된다.


전장도 단순히 칼과 칼이 맞부딪치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열정과 분노가 범벅된 뜨거운 공간이 된다.


예루살렘 성(城)을 함락하기 위한 이슬람군의 총공세 장면은 '반지의 제왕'에서 본 듯하기 때문에 참신하지는 않다.


하지만 감정이입이 충분히 이뤄진 상태에서 벌어지는 전투이고 음향효과가 뛰어나 전장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재현한다.


5월4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