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두 <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cdkim@e-cluster.net >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끈 주역으로 흔히 구로공단의 봉제공장에서 꽃다운 청춘을 재봉틀과 함께 보낸 여성 근로자들을 꼽곤 한다. 시골에서 상경해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고단한 노동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당시 여성 근로자들은 수출입국을 일궈낸 산업역군이었다. 글을 깨우쳐야 한다며 낮에는 일터에서,밤에는 야학을 통해 꿈을 키워가던 애틋한 모습.바로 구로공단의 70년대 모습이다. 그 구로공단이 이제는 이른바 '디밸족'(디지털밸리족)으로 가득찼다. 사양화한 섬유·봉제산업이 떠나고 난 허름한 공장터를 점령한 첨단 벤처빌딩 숲은 젊은 벤처인들이 가꾸는 열정으로 날마다 불야성이다. 패기와 도전정신,그리고 항상 혁신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만들어 가는 이 동네 모습은 말 그대로 '천지개벽'하고 있다. 흡사 테헤란밸리를 옮겨 놓은 듯한 이 곳은 전문기술이나 연구개발(R&D) 고급 인력을 주로 쓰는 알찬 벤처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굴뚝산업의 대명사이던 구로공단이 2000년 12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는 새 이름으로 변신을 시작한 지 4년여 만에 서울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서울디지털단지는 현재 3천7백여개사에 5만6천여명이 일하고 있으며 첨단업종 비율이 83%에 달한다. 4년 전에 비해 업체 수는 5.2배,고용은 1.7배 늘어났다. 내년 말이면 입주 업체 8천5백개사에 고용 인원이 10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쇠락을 거듭한 노후화한 공단이 이처럼 새롭게 부활,국내 최대 벤처기업의 요람으로 변신한 것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찾기 힘든 사례다. 필자의 사무실이 서울디지털단지에 위치해 있어 벤처기업들을 둘러볼 기회가 많은 편이다. 그때마다 젊은 디밸족들의 당찬 눈매와 열정을 느낄 수 있어 뿌듯한 감동이 다가온다. 과거 구로공단 시절 주경야독하던 우리네 누이들의 뜨거운 맥(脈)이 이제는 서울디지털단지에서 세계를 무대로 불을 밝히는 디밸족의 가슴 속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디지털시대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새로운 원리가 지배하는 차가운 경쟁의 세상이다. 우리 젊은 디밸족들이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질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 입주 기업을 위해 봉사하는 필자의 소임 가운데 으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