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서 나왔습니다."


"나 그런 것 안 한다니까."


"아주머니,잠깐이면 돼요. 문 좀 열어주세요."


통계청 충남통계사무소의 김점숙 조사원(34)이 지난 96년 통계청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10년째 하고 있는 실랑이다. 처음에는 너무 낯설고 힘들었다.


"무슨 영업사원도 아니고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속도 많이 상했다. 하지만 이제는 남의 집 문을 여는 데 '도사'가 됐다. 기어이 문지방을 넘으며 "저 징그럽지요?"라고 말할 정도로 넉살도 늘었다.


초년병 시절 대여섯 번을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고 대뜸 욕부터 하는 아주머니와 대판 싸움을 하고 말았다. 겨우 화해를 하고 집 안으로 들어선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장애인 아들에 술취한 남편,그리고 집나간 어린 딸.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모습이었다. "응답을 꺼리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사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어요."


김씨의 하루 일과는 빡빡하다. 그가 담당하는 가구는 모두 60개. 이곳을 날마다 돌며 통계 데이터를 수집한다. 질문도 껄끄러운 것들이다. 주로 사회통계를 담당하기 때문에 '직장을 갖고 있는지,얼마나 버는지,왜 일자리를 찾지 않는지' 등 숨기고 싶은 얘기를 끄집어내야 한다. 가계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아예 해당 가구의 가계부를 한달에 한번씩 수거해 오는 작업을 해야 한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저녁 늦게 방문해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특히 남자 혼자 있는 집을 방문할 때는 10년차 베테랑의 발걸음도 무겁기만 하다. 지난해 있었던 해프닝 하나. 밤 늦게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고 들어오라는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거실 문을 열자 머리가 쭈뼛 섰다. 거실 한가운데 이불을 펴고 누운 집주인이 옆에 앉으라고 자꾸 손짓을 했다. "몸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바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하고 자리를 잡으니 곧 오해가 풀렸지요. 최근에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쳐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분이었어요. 둘이서 한참을 웃었지요."


김씨를 포함한 충남통계사무소 여직원들은 매달 월급의 일정 부분을 떼어내 양로원을 방문한다. 다음달에는 바자를 열고 여기서 나온 수익금으로 중증 장애인들을 데리고 동물원도 갈 생각이다. "봉사활동과 통계청 홍보 활동을 겸한 행사를 앞으로도 많이 열 생각이에요. 국민들이 통계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져야 그만큼 정확한 통계를 작성할 수 있으니까요."


가끔 신문과 방송을 통해 '믿지 못할 통계'라는 기사가 나갈 때면 힘이 쭉 빠진단다. "땀 흘려 하나하나 모은 통계가 엉터리라니 많이 야속해요. 하지만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조사 과정에서 살기가 힘들다는 하소연을 많이 들을 때예요." 김씨는 "얼른 경기가 좋아져 통계 수치가 좋게 나오길 바란다"며 다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