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지금이 변할 때다] (9) 선진국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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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서도 법과 원칙,대기업노조의 솔선수범 등이 노동운동을 변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법과 원칙의 특효=지난 1981년 미국 항공관제사 노조원 1만3천여명은 임금인상과 근로시간단축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파업해제와 48시간 내 복귀를 노조에 권유하고 파업을 강행하면 전원 해고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노조는 이를 무시하고 파업을 계속했다.
설마 해고야 시키겠느냐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직장에 복귀하지 않은 관제사 1만1천여명을 해고시켰다.
불법파업자에 대한 '대학살'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뒤 막무가내식 파업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영국에서도 80년대 초만 해도 '파업공화국'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극심한 파업에 시달렸다.
영국의 노동운동이 변한 것은 1984년 대처 정권때 탄광노조 총파업을 겪으면서부터.대처는 당시 노조와 합의없이 전국 1백74개 국영탄광 중 20개 광산 폐쇄와 2만명의 광부를 해고하는 석탄산업구조조정계획을 발표했다.
탄광노조는 이에 반발하며 총파업으로 맞섰다.
석탄노조위원장 출신지인 요크셔 지방노조가 파업돌입지시를 내리면서 전국 광산노조의 총파업에 불을 댕겼다.
대처 정부는 1년 이상의 장기 파업에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법원은 불법파업을 벌인 탄광노조의 재산을 아예 동결조치 해버렸다.
결국 정부의 법과 원칙 앞에 노조가 백기투항하고 말았다.
○대기업노조가 춘투 잠재워=일본에서는 대기업노조의 온건합리주의 지도자들이 앞장서 70년대 열도 전체를 들끓게 했던 춘투(春鬪) 열풍을 가라 앉혔다.
20년 동안 잘나가던 일본경제는 73년 제1차 오일쇼크로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74년에는 전국적으로 3백30만명이 동원되는 국민춘투까지 벌어졌다.
이때 노조는 무려 32.9%의 임금인상을 이끌어냈다.
예년의 연 5~6% 임금인상률과 비교가 안될 정도다.
이때 일본 금속연맹(IMF-JC)의 민간대공장 노조지도부가 좌파 노조인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의 강경노선에 반기를 들었다.
신일본제철 일본강관 도요타 닛산 도시바 히타치 미쯔비시중공업 이시카와지마 등 금속연맹산하 8개 핵심사업장 노조지도부가 국민경제정합론(整合論)을 제기한 것.핵심은 75년 춘투에서 임금인상을 한자릿수로 자제할 터이니,물가안정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보장 등이다.
미키 당시 수상은 이 제안을 수용했고 노조도 임금인상을 13%선으로 억제했다.
총평은 대기업노조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비판하면서 추계투쟁을 추진했으나 노조들의 호응이 없어 실패하고 말았다.
그 이후 일본 노동현장에는 춘투 대신 춘담(春談)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