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B형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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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에 대한 속설이 열병처럼 퍼지면서 'B형 남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B형 남자는 이기적이고,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하고,게다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급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수줍음이 많은 A형 여자는 이런 남자를 피해야 한다는 그럴 듯한 조언들이 인터넷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우스갯거리로 시작된 얘기가 이제는 여성을 속썩이는 남성의 대명사처럼 굳어버린 느낌이다.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이 같은 성격 구분은 드라마 대사에서 오가는가 싶더니 유명 가수가 'B형 남자'라는 제목의 노래를 유행시키고 드디어는 'B형 남자친구'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B형 남자와 관련된 책들도 여러 권 출간돼 흥미를 끌고 있다.
하나같이 B형을 비웃는가 하면 깎아내리고 한편으론 이들과 연애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한다는 친절한 방법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의 'B형 기피현상'에는 외신도 놀랐다.
얼마 전 로이터 통신은 혈액형별 성격 해석의 시조는 일본의 다케지 후루카와 교수이며, 혈액형 담론이 대중적인 관심을 모은 것은 1971년 일본 작가 마사히코 노미가 쓴 '어떤 혈액형끼리 잘 맞는가'라는 책이 히트하면서라고 보도했다.
한국에서의 혈액형 열풍은 결국 일본 열도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혈액형에 의한 사랑 구분이 비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왜 갈수록 신드롬의 수위는 높아만 갈까.
학자들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상대방을 혈액형으로 쉽고 빠르게 판단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다분히 상업적인 측면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가벼이 들뜨고 흥분하는 우리네 성정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혈액형과 성격을 연관 짓는 이상 풍조를 두고 여기저기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서울 시내 모 유명 대학의 홈페이지에는 심지어 "B형 남자가 바람둥이라는 게 의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느냐"는 질문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진정한 연인들이 또는 어린아이들이 터무니없는 상식에 현혹되지나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