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 논설위원 > 최근 들어 '맞춤형'이란 이름을 단 이공계 교육 프로그램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대학이 산업계가 요구하는 내용의 교과과정을 만들어 산업 현장에서 곧바로 활용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대학들이 너도 나도 나서고 있어 가히 '붐'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대학 가운데서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창의적 소프트웨어(SW) 전문가를 양성하는 'SW석사 맞춤과정'을 이미 작년에 개설해 교육 중이고,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는 삼성종합기술원(SAIT)과 함께 'IT 박사 맞춤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도 LG전자와 '주문형 석사제'를 도입키로 하고 타당성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업계 쪽에서도 대학 내 인재양성 프로그램 마련에 관심을 쏟고 있다. 삼성전자는 KAIST와 성균관대의 반도체 학과 신설을 적극 지원키로 하는가 하면 각 대학에는 '삼성 SDI 드림캠퍼스''하이닉스반도체반''현대호텔반''LG R&D대학원' 등 특정 기업과 연관을 갖고 맞춤형 교육을 시행하는 프로그램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정부 쪽도 팔을 걷어붙이기는 마찬가지다. 오명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은 올해 업무 보고에서 "산학 협력의 맞춤형 교육모델 시범사업으로 오는 9월 KAIST에 미래형 자동차 시범교육과정을 설치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산자부도 현장 맞춤형 기술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공학교육과정 개편지원 사업'을 올해 역점사업으로 펼치고 있다. 어찌 보면 대학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지만 이공계 인재 양성의 새로운 흐름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한국의 이공계 인력이 부족한 편은 아니다. 지난 2001년 기준으로 인구 1천명당 이공계 대학 졸업생은 2.2명으로 미국(0.9명)이나 일본(1.2명)보다도 오히려 많다. 문제는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첨단 분야일수록 이런 현상이 심하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선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을 합친 '메커트로닉스' 전공자가 필요하지만 이런 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을 찾기가 어렵다. '주문식 맞춤교육' 모델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안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학 측은 수요자인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해 냄으로써 산업 현장과 교육간의 괴리를 줄이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계 입장에서도 맞춤형 교육은 전문 지식을 갖춘 필요 인력을 미리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삼성은 연 6천여명에 이르는 이공계 분야 신규 채용인력을 재교육시키기 위해 연간 8백억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으며,업계 전체로는 연간 2조8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그만큼 금전적으로도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맞춤형 교육이 결코 만능의 열쇠는 아니라는 점 또한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맞춤형 교육을 운영할 만한 대학이 그다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맞춤형을 개설 운영할 수 있는 기업 또한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법은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이공계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대학의 기존 교수진만으로 부족하다면 기업의 연구인력을 지원받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기업은 인력의 재교육 비용을 대학에 선투자한다는 입장에서 대학 교과과정 개설에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비싼 맞춤옷이라도 몸매가 시원찮으면 맵시가 제대로 나올 수 없다. 이공계 맞춤형 교육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