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서저(東高西低).' 회원국을 15개국에서 25개국으로 늘린 ‘그랜드 유럽연합(EU)’이 지난 1년간 남긴 경제성적표는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된다. EU통합 확대는 다음달 1일 1주년을 맞지만,독일 프랑스 이태리 등 기존 서유럽 회원국의 경기침체와 동구권 신생 회원국의 가파른 경제성장으로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서유럽 회원국들은 '국경없는 경제'를 표방한 EU통합 확대를 계기로 동구권 회원국에 투자를 확대했지만,일부 기존 회원국 국민들은 신생 회원국에 일자리만 뺏겼다며 EU통합 확대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정치적 통합의 상징인 EU헌법 제정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EU통합의 앞길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욱일승천하는 신생회원국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8개 신생 회원국들은 EU에 가입한지 1년만에 수출이 12% 늘어나는 등 톡톡한 반사이익을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폴란드와 체코의 식품수출은 전년대비 두배,슬로바키아의 식품수출은 세배 늘었다. 국경장벽이 허물어진 효과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연구소(EIU)는 29일 이들의 올해 평균 경제성장률을 기존 회원국보다 약 3%포인트 높은 4%선으로 전망했다. 세계은행도 평균 경제성장률이 4.6%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외국기업들의 투자확대가 동구경제를 이끄는 동력이다. 지난해 동구권에 대한 외국기업 직접 투자규모는 1백50억달러로 전년보다 60억달러 정도 늘었다. 외국기업들이 동구권에 투자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우선 임금이 싸기 때문이다. 독일 서부지역 시간당 임금은 27유로인데 반해 폴란드의 시간당 임금은 5유로다. 독일업체가 폴란드에 공장을 세우면 같은 업종의 이탈리아업체는 원가경쟁에 밀리지 않으려고 폴란드에 공장을 설립하는 식으로 동구권 국가에 외국기업들이 앞다퉈 투자하고 있다. ◆침체일로의 서유럽 회원국 반면 기존 서유럽 회원국들은 경제침체에 허덕이고 있다. 유럽경제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경기지표는 모두 '빨간불'이다. 독일정부는 29일 올해 경제성장률을 당초 1.6%에서 1%로 하향 조정했다. 독일 6개 유력 민간경제연구소들은 올해 성장률을 0.7%로 전망하고 있다. 4월 중 프랑스 기업실사지수는 18개월만에 최저 수준인 97로 나타났다. 이탈리아는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경제분석가들은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 1분기에도 성장률 하락을 예측하고 있다.경기후퇴(리세션)를 우려한 독일과 이탈리아 정부는 유럽중앙은행에 유로 금리인상에 반대한다는 공식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EU헌법 비준 험로 EU가 경제적 통합에 이어 추진중인 정치적 통합의 최종 단계는 EU헌법 제정이다. 하지만 프랑스처럼 국민들이 EU헌법 제정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나라도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EU헌법 제정에 반대하는 비율은 52%에 달한다.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파리에서 프랑스 국민들을 대상으로 EU헌법지지를 호소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EU통합을 주도한 프랑스 정부가 다음달 29일 국민투표에서 헌법제정 찬성을 얻어내지 못하면 정치적 통합은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김호영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