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이중섭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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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수사로까지 번진 이중섭 위작시비를 취재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그거 진짜냐?"는 지인(知人)들의 질문을 받았을 때다.
하긴 이 화백 유족이 느닷없이 나타나 미공개작들을 발표하고,어떤 이는 이중섭그림 6백50여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니 작품 진위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진위문제는 전문가들이 판단할 몫이다. 검찰도 감정 전문가들의 도움이 없으면 미술품의 진위를 밝히기 어렵다. 문제는 감정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다르다는 데 있다. 유족이 공개한 '물고기와 아이'를 위작으로 판정한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감정위원들은 이중섭 감정 전문가들의 극히 일부다. 이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감정 전문가들은 이 논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대부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진위 판단시 감정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출처를 밝히는 것이다. 누가 소장하고 있었는지 소장경로가 입증되는 작품은 감정에 우선해 진품으로 간주한다. 이중섭 그림의 경우 다행히 미망인인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 여사,이 화백과 동고동락을 했던 지인들이 생존해 있어 진위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감정 전문가들의 '감정'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의 여부다.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미술품의 진위 여부를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정설이다. 80년대 후반 이런 일도 있었다. 청전 이상범의 작품 한 점을 놓고 한국고미술협회에서는 모작(模作)으로 판정한 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진품으로 감정했다. 법정까지 간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손을 들어줬다.
이중섭 그림 위작시비가 일 때마다 미술계 내에서는 '가짜'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가짜로 판정한 작품이 나중에 진품으로 밝혀질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가짜라고 주장했던 전문가들은 진짜로 밝혀져도 '아니면 그만이고!' 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가짜 판정한 작품이 진짜로 밝혀지면 책임질 일이 없지만,진짜라고 판정했는데 가짜로 드러나면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점도 진품판정이 적은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번 위작시비를 지켜보며 아쉬운 것은 이중섭의 유작들이 새로 발견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미술계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작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유작들이 새로 드러나면 평가절하가 불가피하고 감정도 새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한 것 같다. 진품으로 판정된 이 화백의 유작은 지금까지 유화 드로잉 스케치 은지화 등 모두 합해 3백여점에 불과하지만 유족 소장품 수십 점이 이번에 공개된 것만 봐도 이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중섭은 국내 화가 중 가짜 그림이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는 화가다. 가짜 그림을 색출해 미술시장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근절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이중섭 그림들이 감정 전문가들의 오판으로 가짜로 판정돼 사장(死藏)되는 것도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훌륭한 화가의 작품은 현재 소유주가 누구이든 언젠가는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우리 후손들이 대대로 보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짜를 판별하는 일 못지 않게 진품을 발굴하는 데도 적극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중섭 작품 진위논란이 한창인 지금 감정 전문가들의 책임감 있는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객관적인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미술계 인사들도 팔짱만 끼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