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업,연구소,정부 등과 협력하고 싶습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통신기술연구소 루슨트테크놀로지의 벨 연구소를 이끌게 된 김종훈 신임 소장(45).


그는 "한국 통신산업이 지난 몇 년간 아주 잘해왔다"며 "언제든지 협력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전화기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의 이름을 딴 이 연구소는 1925년 설립 이후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특허만 해도 3만건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이다.


그는 2001년 루슨트테크놀로지의 광네트워크부문 사장을 그만두고 메릴랜드대학 공대 교수로 가려했다. 이때 벨 연구소 소장을 제의받았다. "당시 헨리 샤키 회장이 소장 자리를 3개월씩이나 비워두고 제가 수락하길 기다렸습니다. 벨 연구소 역사상 소장 자리를 사양한 것은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당시에는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기술 변화의 흐름이나 연구소의 역할 등을 좀 더 객관적으로 연구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김 소장은 그 사이에 기술 분야에서는 최고의 영예로 간주하는 국가엔지니어링 아카데미의 회원이 됐다. 뛰어난 연구원들을 지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지난달 19일 취임하자마자 스태프 및 연구원들과 아이디어 짜내기에 골몰하고 있다. "세계적인 연구소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유능한 인재,최신 기자재 및 연구 문화가 필요합니다. 인재와 기자재는 충분하니까 저는 연구 문화를 바꾸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김 소장은 가장 중요한 과제로 '혁신 과정을 혁신하는 것'이라고 했다. 벨 연구소같은 연구 기관은 하는 일 자체가 혁신인데,그 혁신하는 과정을 확 바꾸겠다는 것이다. 통신 분야의 경쟁이 워낙 심하고 시장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연구개발 과정을 혁신해야만 앞서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제록스의 수석 과학자 존 실리 브라운은 연구개발 단계부터 특허나 기술의 상업화에 정통한 변호사를 팀원으로 참여시켰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디어를 상업화하는 연구개발을 앞당겼다는 것이지요. 저도 연구개발 과정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안을 짜고 있습니다."


김 소장은 벨 연구소가 중점을 둘 분야는 유무선 통신,케이블,위성통신,인터넷 등 모든 기술의 통합이라고 강조했다.


14살 때 이민와 밤에는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고등학교를 마친 김 소장은 명문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응용물리학 석사,메릴랜드 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에 스탠퍼드 대학의 한국학 석좌교수 기금으로 2백만달러를 기부한 애국자다. 북한 핵문제 해결에도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스티븐 보스워스 전 주한미국대사 등과 함께 미국 정부의 공식 외교라인을 돕는 '트랙(Track)2'의 멤버다. 이들과 함께 지난달 중순 한국을 방문,노무현 대통령도 만났다.


김 소장은 돈은 벌 만큼 벌었다. 98년 통신장비회사 유리시스템스를 루슨트테크놀로지에 10억5천만달러를 받고 팔아 그해 미국의 4백대 갑부에 올랐다. 김 소장은 돈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저절로 들어온다며 기술을 좋아하는 자기로서는 지금 자리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스스로 교육자라고 말하는 그는 "최근 한국 부모들이 자녀의 영어 교육에 너무나 많은 신경을 쓴다"며 "영어를 완벽하게 하는 것보다 내용과 실질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군 소령으로 제대했고 철인3종 경기인 트라이애슬론과 마라톤을 거뜬히 해치우는 사나이다.


머레이 힐(뉴저지주)=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