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섬, 벼랑 끝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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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화학섬유업계가 추락 위기에 놓였다.화섬원료인 테레프탈산(TPA) 메이커들이 더 이상 국내 화섬업계에만 가격을 깎아줄 수 없다며 가격 인상을 최후 통첩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원자재가 급등,중국업체와의 가격경쟁 등으로 적자경영을 해온 화섬업계는 원료메이커의 가격인상에 “망하는 길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게다가 원료 공급업체들은 가격인상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공급 중단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화섬업체들은 생산량을 대폭 줄이는 등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TPA 가격 인상 충격
1일 화섬업계에 따르면 TPA 생산업체인 삼남석유화학은 최근 코오롱 휴비스 새한 동국무역 등 수요업체들에 '국제가격과의 차이를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그동안 국내 화섬업체들에는 수출 가격보다 t당 50∼70달러를 싸게 팔아왔지만 앞으로는 가격차를 20달러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삼성석유화학 KP케미칼 등 다른 TPA 생산업체들도 아직 화섬업체들에 통보는 안했지만 기본적으로 삼남석유화학과 똑같은 입장이다.
화섬업체들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TPA를 사면서 t당 30∼50달러를 더 내야 한다.
한 달에 2만t 이상의 TPA를 구입하는 코오롱의 경우 연간 원료 구매비용이 약 1백20억원(1달러=1천원) 더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TPA 가격은 이미 고유가와 중국업체들의 수요폭증으로 2003년말 t당 약 5백70달러에서 올 1분기 약 8백60달러로 50% 가까이 폭등했다.
◆유화업계 "어쩔 수 없다"
유화업계는 "화섬업체의 어려움을 이해는 하지만 자선사업이 아닌 만큼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TPA 원료인 파라자일렌(PX)은 국제가와 똑같은 값에 사고 있는데 국내업체들에만 언제까지 싸게 제품을 공급할 수는 없다는 것.
중국에 수출하면 고가로 현금을 받을 수 있지만 국내업체들은 어음거래여서 현금흐름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업체가 망할 경우 공급사들도 치명타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삼남석유화학(미쓰비시화학 40%,GS칼텍스 20%),삼성석유화학(BP 50%)등의 외국인 주주들이 국내 화섬사들에 대한 저가 공급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가격 정상화'의 한 이유다.
유화업계는 장기적으로 내수비중을 계속 줄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삼남석유화학의 경우 연간 80만t에 이르는 내수물량을 중국에 팔면 연 4백억원의 추가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화섬업계 "정말 망한다"
화섬업계는 가격인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안그래도 돌릴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원료가를 더 올리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게 화섬업계의 하소연이다.
한국화섬협회는 1일 '삼남석화의 가격인상 통보에 대한 화섬업계의 입장'을 발표하고 "국내 화섬산업을 고사시키려는 원료업계의 횡포에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지난 2년간 제조원가의 60∼70%를 차지하는 원료가격의 고공행진으로 업계 전체가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반면 유화업계는 지난해 사상최대의 수익을 올렸다"며 "화섬업계가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유화업계가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오롱 관계자는 "일단은 '가격인상을 수용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지만 삼남측이 입장을 고수하면 폴리에스터 생산량을 대폭 줄이는 것외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