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장을 어지럽히는 요인중 하나가 정부와 청와대의 의견 충돌이다.대통령의 뜻을 따르면 별 문제될게 없겠지만 청와대 비서관들의 생각과 정부의 정책방향이 맞지 않아 삐거덕 거리는 경우가 많다.가끔은 청와대 비서관의 입김이 워낙 세 정부 정책이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지난 2003년 4월 타결된 철도노사협상 내용을 둘러싸고 정부와 청와대 간에 빚어진 의견 충돌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청와대 모 노동담당 비서관은 철도청장에게 노조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노조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이 타결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청장은 청와대 비서관의 위세(?)에 눌려 노조가 요구한 협상안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철도청 상급기관인 건설교통부 장관은 협상타결에 불만을 품고 철도청장에게 즉시 재협상을 벌이라고 다그쳤지만 청와대 개입 탓인지 개선된게 없이 사태가 마무리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철도노사의 협상타결 내용을 듣고 협상에 개입한 청와대 비서관을 몹시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흥은행 매각,화물연대파업 등의 수습과정에서도 청와대 참모진이 해당부처를 제치고 먼저 개입하다 반발을 사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엔 전문위원이 노동부의 보고내용이 못마땅하다며 자료를 집어 던지고 퇴장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전문위원은 친노(親勞)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정책방향이 바뀌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정부와 청와대 간 충돌은 지난 1994년 현대중공업 장기파업사태가 났을때 극치를 이뤘다. 당시 남재희 노동부 장관은 60일 간 지속된 현대중 파업사태를 풀기 위해선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노조의 막무가내식 파업행태로 볼 때 노사자율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청와대 경제수석은 노사문제는 노사자율로 풀어야 한다고 맞섰다. 언뜻 보면 청와대가 주장하는 노사자율원칙이 백번 옳은 얘기처럼 들리지만 당시에는 정치적 보복 성격이 짙어 회사측에서도 몹시 당황했었다. 당시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을 YS정권이 못마땅하게 여겨 보복차원에서 이같은 전략을 쓴 것으로 노동계 주변에선 해석했다. 겉으로는 노사자율 정책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파업으로 경영난을 겪게 만들 속셈이었다는 것. 이 때문에 남 장관은 정부가 나서서 파업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지만 청와대 비서관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고 말았다. 현대중공업은 그 당시 파업이 끝난 뒤 무노동무임금원칙을 철저히 적용해 지금까지 노사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적 보복이 노사안정으로 이어진 셈이다. 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부임한 이인제 노동부 장관은 무노동부분임금,노조의 인사경영권참여 등 친노정책을 펼쳐 청와대와 껄끄러운 관계를 맺기도 했다. 당시에는 YS 측근 실세여서 청와대 참모진의 견제는 받지 않았지만 노동현장을 혼란에 빠트린 죄로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