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국회 처리가 또다시 무산돼 대단히 실망스럽다. 이렇게 계속 처리를 미루기만 하다가 자칫 장기표류하는 사태를 맞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감추기 어렵다. 비정규직 법안 처리는 보통 시급한 과제가 아니다. 전체 근로자의 절반 이상(노동계 주장)이 비정규직인데다 해마다 80만명씩이나 증가하고 있는 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노사(勞使)가 서로의 입장만 고집하다 정작 중요한 비정규직 보호를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특히 이번 노·사·정 논의를 목전에 두고 노동시장과 기업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권위가 느닷없이 비정규직 관련 의견을 발표해 무르익던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버린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권위 의견은 일방적으로 노동계 주장만 옹호한 점도 문제지만 결과적으로 협상에 나선 노동계 지도부의 입지만 좁히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국회는 오는 6월 다시 법안 처리를 시도하겠다고 하지만 낙관할 수 없는 것 또한 우리 현실이다. 소위 춘투(春鬪)로 불리는 임단협이 본격화되는 시즌인 5∼6월엔 비정규직 문제도 핫이슈로 등장할 것이 분명한 만큼 노동계와 경영계는 물론 국회도 관련 법안 처리에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비정규직 법안을 임단협과 연계시키면서 강경투쟁으로 돌아서 격렬한 노사대립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참으로 걱정이 크다. 지금 우리 경제는 무척 힘든 국면에 처해 있다. 경기회복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유가와 원화가치의 상승으로 기업채산성이 악화되고,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던 수출마저 둔화될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자칫 일자리가 더 줄어들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노·사·정이 합심해 기업활력을 되찾고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기업부담을 늘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은 애초에 논란이 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게 우리 생각이다.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의 양보로 노·사·정 대타협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제는 노조도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과거의 행태를 고집하면 노·사·정 모두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