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 한국개발연구원 재정 사회개발 연구부장 > 현행 국민연금제도는 후한 급여 수준과 낮은 보험료 수준으로 인해 심각한 구조적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다. 그 결과 1998년의 제1차 국민연금법 개정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불안정 문제가 부각되고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에 대응키 위해 정부는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를 골자로 한 제2차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마련해 2003년 16대 국회에 제출했으나 논의조차 못하고 회기 만료에 따라 자동 폐기됐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7대 국회에 개정안을 다시 제출했으나 아직까지도 본격적인 심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한나라당이 정부 개혁안과 별도로 기초연금 도입을 포함한 구조개혁안을 공식 제기함에 따라 대립 양상이 한층 심화되고 있다. 정부 개혁안은 국민연금의 구조적 골격은 그대로 둔 채 급여 및 보험료 수준을 단계적으로 조정해 재정적 불균형을 완화하고, 자영자 소득파악 미흡 및 연금 사각지대는 점진적으로 행정능력을 개선해 대처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나라당의 급진적인 개혁안은 재정 불균형,소득파악 미흡 및 사각지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급여 수준을 하향 조정하고 전국민 기초연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초연금은 막대한 재정 소요를 수반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두 개혁 대안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전체적인 합의점이나 타협안 도출이 매우 힘들 것이며, 결국 정치적 선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의 개혁지연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정치적 선택과정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며, 자칫하면 그동안 어렵게 추진해 온 연금개혁 노력 자체가 무산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개혁에서 재정 안정화를 위한 개혁과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개혁을 구분하고,'선(先) 재정안정화―후(後) 사각지대 해소'라는 단계적 개혁을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재정 안정화나 사각지대 해소는 모두 중요한 정책 과제이지만 합의 도출의 용이성이나 개혁의 시급성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두 개혁 대안이 모두 급여수준 인하를 통한 재정 안정화의 필요성 및 시급성을 인정하고 있는 바, 이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 재정 안정화를 추진하고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불안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반면 기초연금 도입을 포함해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개혁은 그 중요성이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될 것이나, 좀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도입 형태 및 적용 범위,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기초연금 도입으로 인한 재정부담 증대를 수용키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며, 정부 내의 관계 부처간 의견 조율도 필요할 것이다. '선 재정안정화―후 사각지대 해소'의 단계적 개혁 추진의 타당성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면 지난 2년간 여야간 의견수렴 실패로 지체되고 있는 연금 개혁을 오히려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여당과 야당은 우선 정부가 제출한 국민연금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되 이에 대한 조건으로 향후 일정기간 내에 기초연금 도입을 포함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추가 개혁을 추진한다는 합의를 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 추진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올 오어 나싱(all-or-nothing) 식의 정치적 힘겨루기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기초연금제 도입에 대해 반대하기에 앞서 이의 필요성 및 시행 가능성을 보다 전향적으로 검토하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야당은 기초연금제의 당위성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재정안정화 노력을 인정하고 정부와 함께 보다 합리적인 사각지대 해소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합의를 통해 국가 백년대계인 국민연금 제도가 도래하는 고령사회 속에서 보다 신뢰받고 지속가능한 노후소득 보장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