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제일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충고를 무시하고 뉴브리지캐피탈에 '꽃놀이패'를 쥐어줌으로써 15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는 전 정부 고위 당국자의 진단이 나왔다. 또 외환위기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한국의 국가부도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강만수 전 재정경제원 차관(현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은 8일 내놓은 회고록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을 통해 외환위기 당시 재경원 차관으로서 겪었던 일들을 자세히 전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엉터리 정책들이 얼마나 많이 시행됐는지 밝히고자 했으며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그는 회고록에서 IMF가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해선 주식을 전액 소각해 국유화한 뒤 매각하거나 청산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정부는 IMF의 권고를 듣지 않고 8.2 대 1로 감자함으로써 국민 세금으로 증권투자를 보상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일은행 매각 결과는 정부가 뉴브리지에 '부실이 많으면 정부에 넘기고 부실이 적으면 내가 먹는 꽃놀이패'를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제일.서울은행 퇴출에 대해 지나치게 겁을 먹어 15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붓는 상황이 전개됐다고 강 전 차관은 주장했다. 강 전 차관은 또 클린턴 대통령이 1997년 11월28일(금요일) 오후 2시 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의 재무상태가 극도로 심각하기 때문에 이르면 일주일 뒤 부도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 현실적인 길은 사흘 이내에 신뢰 회복에 필요한 경제·재정 프로그램을 IMF와 합의해 발표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