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중기와 신용보증축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신록이 눈부시다. 초여름 길목에 접어들어서야 중소기업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60%대에 머물던 공장가동률이 26개월만에 70%대로 올라섰다. 경기실사지수도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희망적인 소식 뒤에 뭔가 불안한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신용보증 축소 움직임이다. 이는 자칫 수만개의 중소기업을 자금난으로 몰아넣는 거대한 지진해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얼마전 국제통화기금(IMF)은 신용보증을 매년 GDP대비 1%(연간 7조원)씩 줄이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신용평가회사인 S&P나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들도 신용보증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이들의 논거는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보증이 재정을 어렵게 만들고 국가신용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IMF는 중소기업 문제가 단순히 경기순환의 차원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공적 신용보증의 축소와 함께 민간 금융재원의 확대를 통해 중소기업을 활성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IMF의 지적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공적신용을 축소하더라도 과연 민간금융부문이 이를 대체해 원활하게 금융을 지원할 수 있겠느냐는 점에 있다.
현재 양대 보증기관인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보증잔액은 약 45조원에 이른다. 보증혜택을 받는 중소기업은 30여만개에 이른다. 업체당 평균 보증액은 1억여원에 이른다.
IMF의 지적대로 해마다 7조원씩 보증을 줄이면 연간 약 5만개의 기업이 보증을 못 받게 된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담보가 없거나 신용도가 낮아 은행에서 자금을 빌릴 형편이 못된다는 점이다. 또 은행은 속성상 극도로 위험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 중소기업은 심각한 자금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IMF가 표현은 '점진적'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실제 처방은 '급진적인' 셈이다.
IMF나 S&P의 의견이 구속력이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국가신용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부 관계자들이 이들의 주장을 묵살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는 내달말까지 신용보증제도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근심 어린 눈으로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최근 기협중앙회 벤처기업협회 등 11개 중소·벤처기업 관련 단체들이 신용보증 축소 반대를 외치며 긴급성명을 낸 것도 이런 위기의식을 반영한 결과다.
중소기업은 약 300만개에 이른다. 국내 기업체 수의 99.8%,고용의 87%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정부는 자금 인력 등 각종 지원책을 쓰고 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정책이고 이의 실행을 원활하게 만드는 수단이 신용보증이다.
만약 대위변제 증가가 중소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보증 축소가 아니라,거꾸로 경쟁력 제고대책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들의 수익성이 개선되면 대위변제 문제가 사그라들고 고용 성장 재정 등 3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득이 신용보증을 줄일 수밖에 없다면 중소기업들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서서히 감축해야 한다. 은행도 기업심사와 기술평가기능을 강화해 신용대출을 늘려야 한다. 어쨌든 중소기업들이 1천만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많은 중소기업들이 '한꺼번에' 벼랑으로 몰리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