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한솥밥 경영'] 협력기업 '성호전자'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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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200명도 안되는 우리 회사가 일본 산요에 버금가는 원천기술 국산화에 성공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죠."
서울 금천구 구로디지털 3단지에 있는 콘덴서 전문 제조업체 성호전자의 박환우 사장은 요즘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개발한 폴리머형 고체 콘덴서 '유니콘(UNI-CON)'을 올해 본격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TV 모니터 휴대폰 등의 기판에 들어가는 폴리머형 고체 콘덴서는 일본 산요가 원천기술을 보유한 차세대 콘덴서로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제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주요 전자업체들도 대부분의 물량을 산요에서 공급받았다.
"처음 기술 개발에 착수한 게 지난 94년 말이었죠. 기술을 확보하는 데만 20억∼30억원 정도 들고 양산한다고 해도 누가 사줄 것인가가 걱정이었습니다."
박 사장은 고심 끝에 기술 개발에 착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여곡절은 많았다. 개발 인력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산요 제품을 그대로 본뜨기도 힘들었다. 2003년엔 고체 콘덴서의 핵심 소재인 폴리머액 연구 도중 경기도 이천공장의 탱크가 폭발,공장 지붕이 날아가기도 했다. 그러기를 10여년. 성호전자는 지난해 4월 마침내 독자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때마침 일본 산요의 원천기술 특허권한도 2003년 말 끝났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어요. 생산라인 건설에 필요한 자금 60억원을 마련할 길이 없었습니다. 원천기술을 확보하고도 참 막막했습니다."
고민하던 중 삼성전자로부터 뜻하지 않은 제안이 들어왔다. 생산라인 건설에 필요한 20억원을 무상으로 지원해 주고 제품 양산에 필요한 기술 지원도 해주겠다는 것. 또 제품을 본격 양산하면 전량 공급받기로 하는 조건이었다. 당시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고 박 사장은 회고했다.
"기술력이 있어도 대기업에 납품하지 못하면 허사인데 삼성전자가 비용도 지원해 주고 제품 구입도 해주겠다니. 이제야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호전자가 생산한 첫 제품은 6파이 고체 콘덴서. 제품 양산을 위해 삼성전자의 부품보증팀과 개발팀 직원 네 명이 사흘 동안 성호전자 공장에서 함께 일했다. 어떤 날은 오전 2시에 삼성전자 직원 두 명이 음료수를 사들고 공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삼성전자와 성호전자 직원들 간의 친분도 돈독해졌다고 한다.
현재 성호전자는 삼성전자에 6파이 고체 콘덴서를 월 50만개씩 공급하고 있다. 가격은 산요 제품의 80% 수준인 개당 200원. 이 회사는 올해 추가로 3개 생산라인을 확보해 연말께에는 월450만개,내년 상반기에는 월750만개의 고체 콘덴서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올해 40억원,내년에는 1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사장은 "국내 전자제품의 63%가량이 일본산 부품에 의존하고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한다면 100% 부품 국산화도 요원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