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윤송이 < SK텔레콤 CI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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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송이 < SK텔레콤 CI본부장 songyeeyoon@nate.com >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전제품을 구입하고 나서 전원을 어떻게 켜야 할지 몰라 한참을 살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디자인에 잔뜩 힘이 들어간 듯한 제품일수록 그런 경우가 많다.
심미안적 구성이나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쓸수록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소홀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예를 들어 파랑 불은 모든 일이 이상 없이 잘 진행되고 있음을,빨강 혹은 주황 불은 경고를 뜻하는 등의 은유가 제대로 지켜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동일한 기능이 하나의 기기 안에서 같은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는 기본 원칙마저 지켜지지 않아 하나의 기능이 명칭에 따라 서로 다른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인지 지능형 인터페이스 관련 국제학회에서 참석자들이 가장 훌륭한 인터페이스로 선정한 기기를 보면 뜻밖의 사실을 엿볼 수가 있다.
복잡하고 상세한 다이얼을 갖춘 제품이나 사용자가 이해할 수 없는 동작을 '알아서' 처리해 주는 기기들이 아니라 스위치 하나 없이 전원에 플러그를 꽂아 동작을 시작하면 초록색 불이 켜지고,플러그를 빼면 그대로 동작을 멈추는 직관적 인터페이스를 지닌 무선 네트워크 제공 기기가 선정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본이 잘 지켜지지 않는 우리 주변을 살펴볼 때 이런 일은 전혀 의외의 결과가 아니다.
이러한 기본 원칙은 오히려 단순하기 때문에 지켜지기 어려운 것 같다.
더 좋고 편리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려는 고민은 종종 일부 의욕이 넘치는 엔지니어나 디자이너들에 의해 만드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함으로 나타나니 말이다.
과학문명의 급격한 발전과 문명 이기의 생활화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이러한 현대 문명의 이기를 만드는 것은 좀더 편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살기 위해,또 생활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의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면 우리 삶이 척박해지지 않을까.
삶이 복잡해질수록 단순한 것에 대한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늘어날수록 단순함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엔지니어나 디자이너가 더욱 많은 고민을 동반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단순함을 실현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외관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제품들이 사용자가 생각한 대로 동작할 때 느껴지는 아름다움이야말로 기술 발전에 의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택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