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용필이 주옥 같은 히트송들을 내놓은 게 몇 살 때였는지 아십니까?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어떻고요? 모두 20∼30대 때 만든 작품입니다."


올초 LG그룹 내 첫 외부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돼 화제가 된 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52)이 한국 기업의 잘못된 인사 관행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한국P&G와 해태제과 사장 등 국내외 기업을 두루 거친 차 사장은 지난 9일 연세대 경영대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 도중 학생들로부터 한국과 외국 기업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 기업은 젊은 인재를 사장시키는 구조"라며 이같이 비판했다.


"사람이 창의적인 능력을 최고조로 발휘하는 때는 20∼30대입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 기업에서는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부장·임원 밑에서 20∼30대 인재들이 대리·과장으로 10년씩 썩는 구조이지요.오전 내내 일장연설식 회의를 하고는 점심 먹으러 나가 오후 2시가 넘어 들어와 대충 보고받고 오후 4시가 돼야 업무 지시를 내리는 중간 관리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결국 신입사원은 오후 4시부터 야근 준비를 해야 하지요."


그는 "입사 5년 안에 브랜드 매니저가 되지 못하고,10년 안에 사장에 오르지 못하면 스스로 나가야 하는 P&G 같은 외국 기업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파릇파릇한 30대 경영자가 나올 수 없는 현 기업 풍토에서는 경영진의 머리가 비고 경직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차 사장은 LG생활건강 사령탑을 맡은 후 비효율적 근무관행을 깨뜨리기 위해 '플렉서블타임제'(오전 8시나 9시 중 편한 출근 시간을 선택한 뒤 오후 5시나 6시에 퇴근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스스로 오전 7시30분에 출근,오후 5시30분이면 '칼퇴근'하는 등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차 사장은 경기고 졸업 후 미국 뉴욕주립대 회계학과,코넬대 MBA,인디애나대 로스쿨에서 수학하고 AICPA(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까지 갖춘 정통 해외파다.학벌만 보면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았을 것 같지만 나름의 사연도 많다. 고등학교는 재수해 들어갔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해외로 보낼 수 없다'는 아버지 반대에 부딪쳐 유학도 가지 못할 뻔했다.다행히 어머니가 꽁꽁 숨겨뒀던 패물을 팔아 마련해 준 돈으로 유학길에 올랐지만 일주일 만에 '도저히 적응이 안돼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떼를 썼을 정도의 '철부지'였다고.


그러나 그는 "2주일만 더 견뎌보고 그때도 안되겠으면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격려에 힘입어 최선을 다한 결과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며 "순간순간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