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 탐험을 소재로 만든 대부분의 영화들은 도전과 성취,혹은 위대한 실패를 긍정적 관점에서 다뤄왔다.


하지만 임필성 감독의 영화 '남극일기'는 남극이라는 한계상황에서 빚어지는 대원들 사이의 갈등과 충돌을 그려낸 미스터리물이다.


감독은 탐험대원들이 지닌 정복욕의 어두운 그림자를 집중적으로 포착한다.


화면 색상도 초반부에는 설원의 백색이 주류를 이루다 점차 검은 톤으로 바뀐다.


'욕망이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었어'라는 영국 탐험대의 일기 문구가 주제를 드러낸다.


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도전했던 '도달 불능점'은 초라하고도 섬뜩한 풍경이다.


도전이 순수성을 잃고 과욕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현대인들도 자신만의 도달 불능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영화는 묻고 있다.


영화는 한국 탐험대가 탐사 도중 80년 전 영국 탐험대의 원정일기를 발견한 뒤 일기에 적힌 것처럼 대원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공포가 엄습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영하 80도의 혹한과 대원들을 순식간에 삼키는 폭풍설,크레바스(깊은 틈)들은 대원들의 본성을 드러내기 위한 보조 역할에 머문다.


시간차를 두고 네 대원은 두려움에 휩싸이지만 대장 김도형(송강호)의 집념은 광기로 변한다.


이런 모습이 내레이터를 맡은 막내대원 김민재(유지태)의 시선으로 펼쳐지면서 이성과 욕망의 함수관계를 제시한다.


민재는 도형의 이성적 인격이다.


그러나 그 이성은 탐욕에 잠식당하곤 한다.


두 사람의 최후 대결은 도형의 내적인 갈등을 시각화한 장면이다.


도형이 민재를 향해 "너는 날 멈추게 했어야지"라고 뱉는 말이 그 증거다.


하지만 주제와 관련한 굵직한 에피소드들을 지나치게 부각함으로써 세밀한 묘사 부족으로 긴장감은 떨어진다.


폭풍설이 갑자기 몰려올 때 대원들이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을 무시한 채 텐트 안에 대피해 있는 장면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이 그런 사례다.


김도형이 광기에 빠지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19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