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였다. 2년 전 구입한 에어컨 회사(위니아 만도)에서 전화가 왔다. 여름철을 앞두고 각 가정의 에어컨 사전점검을 실시 중인데 편안한 날짜와 시간을 정해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담당 직원은 약속한 날 아침 다시 전화해 시간을 확인한 뒤 정확하게 도착, 에어컨 상태를 살펴주고 돌아갔다. 배달이나 애프터서비스를 해줄 때 약속 시간을 어기는 통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던 만큼 실로 고마웠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 25주년 기념일을 맞아 네 식구가 꽤 이름 있는 중식당에 갔다. 코스 요리를 시켰는데 처음 나온 수프를 거의 다 먹었을 즈음 딸애 것을 보니 유독 묽어 보였다. "그건 왜 그러니" 물었더니 처음부터 맹물 같았다고 했다. 이상했지만 날이 날인 만큼 그냥 참고 먹었던 듯했다. 종업원에게 얘기했더니 뜻밖에 "침이 섞이면 그렇게 된다"고 대답했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번째 요리가 마냥 늦어지길래 종업원을 불렀더니 "착오가 있었다"고 말한 뒤 돌아서곤 종무소식이었다. 겨우 두번째 요리인 칠리새우가 나왔는데 1인당 한 마리씩 주는 것이었음에도 불구, 네 마리 중 한 마리가 유독 작았다. "튀김옷이 벗겨져서 그렇지 새우 크기는 똑같다"는 종업원의 말에서 미안하다는 기색은 찾기 어려웠다. 상한 마음을 겨우 누르고 나오는데 계산대에선 "문제가 있었던 만큼 할인해줬다"고 내뱉듯 말했다. 문제를 지적했을 때 즉각 사과했으면 마음이 풀어졌을 텐데 모르는 체하곤 계산할 때 할인해 줬다고 생색내는 걸 보자 고맙기는커녕 쓴웃음만 났다. 두 가지 일은 좋은 상품, 훌륭한 서비스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만들었다. 상품과 서비스를 다루는 모든 곳에서 말로는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감동을 외치면서 실제론 위의 식당처럼 고객을 바보 내지 봉 취급하는 곳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정수기의 필터를 바꾸는 것 같은 일에서도 소비자가 편한 시간을 묻기보다 서비스 요원의 스케줄에 맞추라고 하기 일쑤고, 유명 브랜드 옷도 일단 판매하고 나면 수선 등은 귀찮아하기 다반사다. 제아무리 신경을 써도 하자 있는 제품이 나올 수 있고, 일을 하다 보면 착오가 생길 수도 있다. 문제는 고객의 클레임에 대처하는 태도다. 이의를 제기하는 즉시 사과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될 것을 잘못하지 않은 양 우기거나 무심하게 대처함으로써 고객으로 하여금 영영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소비의 미래'를 쓴 다비트 보스하르트는 "상품이란 고객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상징의 총합"이라고 말했다. 상품의 가치란 쓸모뿐만 아니라 그것이 주는 행복과 소속감,차별화에 대한 갈망의 충족 등이 더해져 결정된다는 얘기다. 고객의 요구는 결코 거창하지 않다. 친절하게 대해주고, 약속시간을 잘 지키고, 작은 일이라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해 달라는 것 정도다. 배달이 잘됐는지 확인하는 전화 한 통, 수선이 늦어지면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진다는 설명 한마디, 심지어 쇠고기를 팔 때 기름을 발라낸 다음 무게를 달아주는 작은 정성 하나에도 고객은 감동한다. 고객의 욕구와 기분을 이해, 작은 시스템 하나를 고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또 한 가지. 고객감동을 이뤄내려면 의사 결정권자들이 현장의 모든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필요하다. 다윈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생물만 살아남는다고 했으나 무한경쟁에서 생존하자면 환경(업체)이 생명체에 적응해야 한다. '최악의 고객이 최선의 고객'이라는 말도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