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구타를 피하려고 남편을 살해한 여성 피고인의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7부(고영한 부장판사)는 13일 자신을 폭행하고 친딸을 성추행한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된 이모(43)씨에 대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따른 심신미약을 인정,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구타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우울증 등 과민상태에 빠져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상당히 떨어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따른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때는 형법 제10조에 따라 감형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남편의 가정폭력과 딸에 대한 성추행 등으로 중증 우울증을 앓아오다 딸이 강간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이를 막지 못하는 어머니로서 책임감과 죄책감을 겪으며 범행을 저지른 만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후 자수를 했고 피해자 가족도 선처를 탄원하고 있으며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해 감형한다. 형을 유지할 것인지 집행유예를 할 것인지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생명을 앗아간 살인이라는 점에서 실형을 유지하기로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의 정당방위 주장에 대해 "`매맞는 아내 증후군'에 해당해도 이혼이나 상담, 수사요청, 친지들에 대한 도움 요청 등 적극적 방법을 취하지 않고 만취해 잠든 남편을 살해한 것은 긴급피난행위와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자신을 때리고 딸을 추행하는 등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휘두르다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을 태권도복 띠로 목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금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올 3월에도 남편에게 상습구타를 당해오던 중 욕설을 하는 남편을 흉기로 살해한 40대 여성 피고인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해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5년을 선고한 판결이 나왔었다. 한편 서울고법 형사8부(허 만 부장판사)는 11일 부인의 잦은 외출과 자신을 무시하는 언행으로 불만이 쌓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등 우울증에 빠져 부인을 살해한 이모(37)씨에 대해서도 심신미약을 인정,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서울=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