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벽전문 등반가'로 불리는 박정헌씨(34)는 등로(登路)주의 산악인이다.


등로주의란 얼마나 높은 곳을 오르느냐에 초점을 둔 등정(登頂)주의와 달리 어떤 경로로 얼마나 어렵게 올랐느냐에 주된 관심을 두는 등반 방식.


지난 2002년 히말라야 시샤팡마에서 경사도 70도 이상의 암벽지대에 새 루트를 개척해 '코리아 하이웨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런 박씨가 지난 1월 후배 최강식씨와 함께 해발 6440m의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 등반에 나섰다.


셰르파도 없이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새 길을 내는 것이 그의 목표.


사흘 만에 정상을 밟았지만 하산길에 최씨가 크레바스(눈에 묻힌 계곡이나 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져 25m 아래로 추락했다.


두 발목이 부러진 채 허공에 매달린 최씨를 지탱하는 건 지름 5mm의 자일(끈)을 당기고 있는 박씨의 몸통뿐.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최씨의 몸무게를 오로지 몸으로 견뎌내던 박씨의 머리 속에 퍼뜩 이런 생각이 스친다.


'자일을 끊어야 하나….'


하지만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이 자일을 같이 맨 산악인의 운명.


최씨는 3시간여의 사투 끝에 크레바스를 빠져나왔다.


천신만고 끝에 두 사람은 구조됐지만 박씨는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최씨는 손가락 9개와 발가락 대부분을 잘라야 했다.


생사를 넘나들었던 두 산악인의 이야기가 '끈'(열림원)이라는 책에 담겨나왔다.


수족을 잃고,더 이상 산에도 오르지 못하게 됐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 산 사나이들의 진한 동료애가 감동을 자아낸다.


232쪽,9500원.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