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위험자산 선호경향(resort to risk)보다는 안전자산 선호경향(flight to quality)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 투자자들의 투자기준이 이처럼 바뀌는 것은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세계경제 성장률(IMF 기준)이 지난해 5%대에서 올 상반기에는 4%대로 내려앉았다. 미국 경제는 3%대로 떨어지고 일본과 유럽 경제는 1%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동성이 위축되고 있는 것도 위험자산을 기피하는 요인이다. 미국의 연방기금 금리는 불과 1년 만에 2%포인트나 인상됐다. 영국 호주 중국 등의 정책금리도 올랐다. 절대적인 유동성 뿐만 아니라 국제간 자금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펀드들의 활동력 지표인 레베리지 비율도 각종 위기설에 따라 축소되고 있는 것이 요즘 분위기다. 경기 둔화와 유동성 축소로 그동안 가려졌던 위험요인이 노출되고 있는 것도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더 선호하는 이유다. 미국의 쌍둥이적자를 비롯한 국제수지 불균형 심화로 각 국간 통화와 통상마찰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세계 경제의 양대 중심국인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투자자들을 더 불안하게 하고 있다. 민간 신용등급 체계상에서도 그동안 국채에 버금갈 정도로 안전하다고 평가됐던 미국의 포드와 GM자동차의 투기등급 전락으로 일대 혼란을 겪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도 당분간 국제 투자자들에게 위험자산을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을 보면 금융자산보다는 실물자산,같은 금융자산 내에서는 헤지펀드를 비롯한 각종 펀드보다는 금융기관 예금,지역별로는 이머징 마켓보다는 선진국 시장에 대한 선호경향이 뚜렷하다. 국제외환시장에서도 미국의 쌍둥이적자에 대한 우려와 상관 없이 안전통화(safe-haven currency)로서 달러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회사채 시장은 급속히 위축되는 대신 국채시장이 부각되고 점이 눈에 띈다. 대부분 선진국들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재정수지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국채발행을 늘리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로 클린턴 행정부의 조기상환(buy-back) 계획에 따라 한동안 중단됐던 미국의 30년 만기 국채가 조만간 발행될 예정이다. 국채 가운데에서도 이머징 국가의 국채보다는 선진국 국채,만기별로는 단기채보다는 장기채의 선호도가 높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의 국채시장일수록 장·단기 국채 간의 금리차가 줄어들면서 수익률 곡선(yield curve)의 기울기가 완만해 지고 있다. 이론상으로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앞으로 경기가 하강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해 준다. 결국 이 같은 변화는 우리 경제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국제 투자자들 사이에 '이머징국·남북한 대치국·중국과 일본 간의 중간국'으로 알려져 있고,그 어느 국가보다 외국인 비중이 높은 우리로서는 요즘처럼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경향이 뚜렷해지면 질수록 그만큼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과 경제각료들은 설득력이 없는 근거로 우리 경기를 낙관하기 보다는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서 나타나는 최근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경제를 근본적으로 안정·회복시킬 수 있는 선제적인 정책 마련에 더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