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립대 법인화 반대 명분없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權大鳳 < 고려대 교육대학원장 >
한국에서 공무원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부처는 교육부이다.
본부 인원이 많아서가 아니라 국·공립학교의 교수 교사 교직원들이 모두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을 법인화하게 되면 공무원 수가 그만큼 줄어들어 제살 깎기를 해야 하는 곳이 교육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를 진작시키고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국립대학 법인화 추진정책을 발표하였지만 국립대학 관계자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하다.
그렇다면 일본의 국립대학들은 왜 법인화를 선택하였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작년 4월에 도쿄대를 비롯한 모든 국립대학을 공익 법인화하였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던 1990년대 초부터 약 10년간 일본 정부와 국립대학들이 공동으로 노력한 결과가 현실화된 것이다.
그동안 몇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방만하게 운영돼 오던 국립대학의 개혁을 국익 차원에서 이끌어온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국립대학들은 연합과 합병을 거쳐 법인으로 변모하였고 교수들과 교직원들은 스스로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났다.
이에 자극받은 사립대학들도 생존 차원에서 대학 혁신의 고삐를 늦추고 있지 않다.
와세다 대학이 기업인을 부총장으로 영입하여 거액의 관리비를 감축하는 데 성공하자 도쿄대는 그를 법인의 이사로 추대하였다.
국립대학 체제가 법인으로 바뀌면서 교수회 대신 이사회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도쿄대는 법인화되면서 재무와 경영을 책임지는 최고 결정기구인 경영협의회를 구성하였다.
법인화를 계기로 대학 경영이라는 개념이 대학 행정에 도입되었고 올해부터 대학원 교육학연구과에 '대학 경영, 정책 코스' 석ㆍ박사 과정을 개설하면서 대학을 경영할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엄청난 변화이다.
일본은 국립대학이 법인화되기 전에 이미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운영체제가 달랐다.
대학 입시만 하더라도 국립대학은 1977년에 설치된 국립대학입시센터를 모체로 하여 2001년 설립된 독립 행정법인인 대학입시센터가 주관하는 시험을 치렀지만, 사립대학은 완전 자율에 맡겨졌다.
자율을 만끽하는 사립대학을 바라보는 일본 국립대학의 구성원들이 대학 자율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국립의 틀을 벗어나는 길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립대학과 일본 정부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일본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무산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립대학 법인화의 또 하나 변수는 구성원들이 쥐고 있었다.
국가 공무원이었던 교수들과 교직원들은 공무원으로 안주하면서 누릴 수 있었던 통제적 혜택보다는 민간인 신분으로 바뀌었을 때의 자율적 혜택을 선택한 것이다.
대학의 교수나 교직원들이 굳이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공무원 신분을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공무원 신분이 아닌 사립대학 교수들이 교수직을 수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국립대 교수들이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립대학의 법인화를 반대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
국립대학의 법인화를 추진하기 위해서 교육부가 먼저 추진해야 할 일은 사립대학들에 대학 경영의 자율권을 OECD 국가 수준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국립대학은 물론 사립대학도 건학 이념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자율의 폭이 매우 좁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대학이 법인화한다고 해서 자율권이 확대될 것도 아닌데, 굳이 법인화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부는 먼저 사립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비롯한 대학 경영의 자율권과 책무를 부여하여 국립대학이 법인화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일본 정부가 국립대학의 법인화를 통해 국민의 세금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통제를 풀고 자율의 폭을 넓혀주어 미국의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적인 대학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인력개발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