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 당국자는 남북 차관급 회담의 성사 배경에 대해 "북측의 전격적인 제의를 우리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수용한 것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그만큼 비공식 채널을 통해 남북간 접촉이 꾸준히 이뤄져 왔으며 이미 지난주부터 당국 간 회담은 기정사실화돼 왔다는 설명이다. 이번 회담의 성격이 '차관급'이라는 점도 의미가 크다. 장관급으로 이어지는 고위급 회담의 징검다리이자 경협추진위원회,적십자회담,장성급 군사회담 등 중단된 다른 분야의 남북 간 만남을 풀어주기 위한 역할을 맡는다는 뜻이다. 더구나 남측 수석대표인 이봉조 통일부 차관과 북측 대표인 김만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은 2002년 8월 금강산 휴게소에서 만나 교착 상태에 빠졌던 장관급 회담을 재개시킨 인연을 갖고 있다. ◆북,무엇을 노리나 북측이 전화 통지문에서 밝힌 회담의 표면상 목적은 '북남관계의 정상화'이다. 하지만 북한의 1차 목표는 비료지원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모내기 철을 앞두고 지금 당장 비료가 지원되지 않을 경우 북한은 올해 100만t 이상의 식량이 부족한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금 비료를 지원하는 것이 나중에 식량을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도 "비료 지원은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누차 강조해온 만큼 비료를 준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지원량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북한은 50만t을 요구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일단 예년 수준인 20만t을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20만t 외에 '+α'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또 비료전달 방법으로 철도망을 통한 육로 수송을 제안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이미 개설된 남북한 철도망을 이용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완화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6자 회담에 미치는 영향은 정부 고위 당국자는 "회담의 초점은 남북 관계를 정상화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지렛대'로 만들어나가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고리가 '비료'라는 조건을 달지는 않았지만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가 협상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얻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다. 하지만 당장 이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이번 회담을 통해 평양 당국과 '탁 터놓고' 북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통로만이라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장관급 회담의 재개를 의미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번 회담을 앞두고 '남북간 소통의 제도화와 상설화'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다. 일부에서는 지난주 북.미 간 접촉창구인 '뉴욕 채널'이 재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근거로 북한이 남북 및 북.미 간 대화를 통해 북핵문제의 일괄 타결을 시도하는 태도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회담도 6자회담 복귀에 앞서 우리 정부를 통해 미 행정부의 의도를 탐색하기 위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북핵 문제에서만큼은 북.미 간 직접 협상을 기본 전략으로 삼아왔고 남북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꺼렸던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기대가 '순진한 발상'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6자회담 복귀라는 국제적 압력을 돌파하기 위해 '민족적 동질성'을 앞세워 우리 정부를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며 "결국 북측의 의도는 회담의 뚜껑이 열려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