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장 올인 구체정책 세워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류동길 <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
지난 1분기 성장률이 2%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을 벗어난 저조한 실적이다. "경제에 올인하겠다"는 대통령의 다짐도 있었고 "한국경제는 모든 측면에서 완전 회복, 빠른 속도로 성장을 다시 시작했으며 이 성장은 지속될 것"이라는 단정도 있었던 터라 실망은 배가된다.
소비가 늘어나 경기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던 낙관적 기대는 사라졌다. 소비가 살아나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투자증대와 이를 통한 주력산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의 경쟁력이다. 그래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소비심리 위축도 성장이 저조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조선산업 등이 수출을 주도하고 경제를 떠받치고 있지만 이들은 80년대와 90년대에 집중 육성된 산업이다. 언제까지 이들 산업에 의존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주력산업이 있다. 한국경제를 떠받칠 새로운 산업이 계속 솟아나야 한다.
우리 사회 어느 곳을 보아도 투자를 부추기고 경제 살리기에 힘을 쏟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기업은 기력을 잃고 강성노조의 힘은 커지고 있는가 하면, 집단ㆍ지역 이기주의에다 이념갈등까지 겹치고 있는 형국이다. 미래를 열기는커녕 과거를 파헤치는 일에 매몰돼 있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연출되고 있는 몇 장면을 한번 보자. 진주의 논개사당에 걸린 논개 영정이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에 의해 불법으로 철거됐다. 윤봉길 의사의 사당인 충의사에 걸려있던 현판이 무단 철거됐다. 논개 영정은 친일 화가의 그림이고 현판은 친일행위를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라는 이유 때문이란다. 문화재청장이 광화문의 현판을 교체하려고 시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북대 박물관 정원에 있던 30여년 수령의 히말라야시다 나무 한 그루도 박정권 시절의 친일잔재라는 이유로 잘려져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과 글씨, 나무 한 그루까지 친일(親日)과 반일(反日)로 가르는 세상이 됐다.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에 무차별적으로 문화유산을 파괴한 홍위병의 행태와 비슷하게 보인다. 문화혁명은 중국을 빈곤과 혼란과 후퇴로 몰아넣은 20세기 최대의 실패한 혁명이었다. 마오쩌둥과 소수 참모들만의 아이디어로 갖가지 일을 벌였기 때문이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시대 분위기에 편승, 현판을 떼어내고 나무를 자르는 걸 애국운동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은 훼손하거나 청산하기에 너무 벅찬 시설이라서 그대로 두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누구나 공과(功過)는 있게 마련이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경제성장에 집착한 지도력은 바르게 평가해야 옳다.
육체적 불구는 개인적 불행이지만 정신적 불구자가 많은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말이다. 성장을 강조하면 구시대적 발상이고, 분배를 강조하고 과거를 바로잡겠다고 나서는 게 시대정신인 것처럼 비쳐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비효율적인 것을 개선하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해 경제성장을 이루어내려는 국민적 생활태도나 자각, 여기에 바탕을 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런 기풍과 분위기를 조성하고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는 '정신적 불구' 행태를 바로잡아야 경제는 살아난다. 그런 일에 앞장서는 건 정권과 최고지도자의 몫이다.
빨리 달리다가 힘들면 천천히 걸을 수도 있고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쉬어가는 그런 불황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1분기 성장률이 저조하다는 것보다 빨리 뛸 수 없는 성장잠재력의 고갈이 걱정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기업을 뛰게 하고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걷어내는 구체적 정책이 필요하다. "개혁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위기를 확대"하려는 게 아니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