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미국 자동차와 자유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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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 자유무역이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는 것은 '비교우위론(比較優位論)'에 근거한다. 하지만 국제무역의 현실은 비교우위론이 그대로 적용될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자연적 장벽'뿐 아니라 '인위적 장벽'들이 아직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무역은 갈 길이 멀다고 한다.
미국의 대표 기업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미국의 간판산업인 자동차를 이끌고 있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의 회사채가 정크본드 등급으로 추락한 것은 그 상징적 사례로 여겨지는 듯하다. 어느 나라 기업이든 경쟁력을 상실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데도 왠지 찜찜하다.
특별히 미국이나 이들 기업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왜 이렇게 됐는지 여기저기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정작 미국 정부나 당사자들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필자는 그것이 제일 궁금하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찜찜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GM과 포드의 신용등급이 하락하자 '수요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다''노조 탓이 크다''연금과 의료보험 부담이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등 여러 분석들이 국내 언론에서 잇따라 나왔다. 미 자동차의 추락은 이들 기업 내부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이에 반해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의 분석은 그 뉘앙스부터 다르다. 두 회사가 지속적으로 종업원을 감축해 왔음에도 아시아 및 유럽 경쟁사들에 밀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했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두 회사의 자본조달 비용이 상승할 것이고 이에 따라 외국 경쟁사들과의 가격 및 상품 경쟁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도 했다. 마치 두 회사가 구조조정을 해 왔음에도 왜 외국 경쟁사에 밀리는지 그 이유를 잘 생각해 보고 가격경쟁력 악화 등에 대한 대비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처럼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미 자동차 업계가 의회를 대상으로 아시아 통화의 절상을 촉구하는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외신이 들려온다. 이쯤 되면 미국은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있다는 심증이 갈 만도 하다.
미 정부나 자동차 회사들의 인식이 이렇다면 그것이 과연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더욱 속상한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과의 무역 비중이 큰 나라들로선 후폭풍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훨씬 본능적이다. 도요타는 GM과의 연료전지차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두 거대 기업이 차세대 기술표준을 선점하려는 목적 아니냐는 분석이지만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도요타는 GM이 위기에 빠지자 즉각 가격이나 기술 측면에서의 지원 의사를 내비쳤다. 이미 미국에 당해본 경험이 있는 도요타이고 보면 그 의도는 짐작할 만하다.
현대자동차라고 걱정을 안할 리 없다. 도요타는 현대자동차를 무서운 경쟁 상대라고 치켜세웠지만 이 상황에선 그런 칭찬이 무척 부담스럽다. 마치 미국 시장에는 일본 자동차뿐 아니라 한국 자동차도 있다는 점을 미국에 상기시켜 주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걱정은 그래서 더한지 모르겠다.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자들은 자동차 위기를 최대한 활용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다른 업종들도 강 건너 불 구경할 처지는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씁쓸하게도 자유무역의 또 다른 장벽 하나를 발견한다. '알아서 처신하게 만드는' 강대국의 '정치적 장벽'이다. 자유무역은 그런 측면에서도 갈 길이 멀다.
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