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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 (19일ㆍ목요일) 큰 일교차...감기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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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이 대체로 맑겠다. 아침 최저 10∼14도,낮 최고 23∼28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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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예된 욕망이 빚은 가장 아름다운 시절, 25년을 건너온 관능 '화양연화'

      왕가위 감독의 2000년 작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제목 그대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다루지만, 그 찬란함은 역설적으로 지독하게 폐쇄적인 공간과 억압된 신체 언어, 찰나의 스침을 통해 완성된다. 탐미적인 프레임 안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의 연기는 그 자체로 풍경의 일부가 되고, 다시 풍경을 압도하는 서사가 된다. 이 영화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능을 유지하는 이유는, 육체적 접촉의 유예와 억압된 욕망의 미학을 통해 관객의 감각을 시각에서 촉각으로 전이시키기 때문이다. 영화는 노골적인 접촉 없이도, 시선과 응시만으로 관능의 형태를 완성했다.감독은 ‘프레임 안의 프레임’ 기법을 연이어 활용한다. 주인공들은 늘 좁은 복도와 계단, 격자무늬의 창틀, 혹은 촘촘한 커튼 사이의 틈새에 갇혀 있다. 이러한 미장센은 1960년대 홍콩 상하이 이주민 사회의 고독과 소외, 불안정한 정체성을 시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좁혀진 프레임 안에서 장만옥의 연기는 ‘부동(不動)’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녀가 입은 20여 벌의 치파오는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완결된 미장센이다. 끝까지 여며진 치파오의 높은 깃은 인물의 보수성과 자기 검열을 상징한다. 장만옥은 이 의상에 갇혀 고개를 마음대로 돌리거나 어깨를 늘어뜨리지 못한다. 미장센이 배우의 신체를 물리적으로 제약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제약 덕분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거나 사소하게 취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폭발적인 감정의 진폭을 획득하게 된다.<화양연화>에는 그 흔한 베드신도, 키스신도 등장하지 않는다. 격정적 서사를 그리지도 않으며, 극단적 충동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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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에서 지휘봉으로, 르노 카퓌송의 다음 악장

      음악계와 연예계를 넘나들며 클래식 음악을 두루 전파하는 전령사들이 몇몇 있다. 클래식 연주자들을 아티스트의 범주에서만 바라보며 그들에게 예술적 진정성을 요구했던 과거와는 달리, 밀레니엄 시대의 클래식 연주자들은 연예인 뺨치는 화려한 비주얼과 스테이지 매너 그리고 대담한 연주로 대중들을 사로잡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은 스타로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국가적 행사에 참여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며 클래식 공연의 범위를 넘어서 중요하고 굵직한 공공 이벤트에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Renaud Capuçon)과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 형제는 클래식 음악계와 연예계를 넘나들며 다양하고 폭넓은 활동을 펼치는 대표적인 클래식 아티스트이다.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카퓌송 형제의 이름만큼은 잘 알 정도로 이들은 사회적 공인이 되었다. 지난 1월 27일 샹젤리제 극장. 프랑스의 국민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의 50세 생일을 맞이하여 두 형제와 그들의 젊은 시절 데뷔를 지원했던 음악계의 대모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 카퓌송 형제는 신인 시절 아르헤리치를 통해 음악계에 알려졌던 아티스트들이며 아르헤리치와 오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Chamber Orchestra of Europe)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여전히 견고한 연주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아르헤리치와 스타급으로 성장한 카퓌송 형제가 한 무대에서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으로 관객들과 짜릿한 감흥을 함께 나누었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 르노 카퓌송은 협연과 지휘를 겸하며 더더욱 주목받았다.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은 피아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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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막힌 '방탈출'의 기술을 그린 소설이 있다고?

      2020년대의 팬데믹을 겪기 이전에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써야 하고, 집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밖을 나갈 수 없는 생활을. 병에 걸리면 그간의 동선이 공개되고 일정 기간 타인과의 만남을 최소화한 채 격리되어야 하는 규범을. 그러나 우리는 그 방 안에서의 시간을 겪었고, 다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같다. 믹스커피를 몇백 번 저어서 쫀득한 달고나라떼를 만들기도 하고, 뜨개질을 하며 책을 읽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 보통 안락한 휴가보다는 감금과 불안의 시간으로 기억되기 때문일 터다.“사람에겐 몇 개의 방이 있는 걸까요. 그 방이 모두 어둠으로만 구성된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요. 제게도 많은 방이 있습니다. 아주 어둡고 아주 더러운 방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 방에서 탈출하고 싶기도 하고 탈출하고 싶지 않기도 하단 말입니다.” (136~37쪽)3년 전 『고독사 워크숍』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이 기억 속에 여전한데 박지영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도 만만찮은 작품이었다. 제목은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불운일지 행운일지 모르겠는 이 말 자체가 우리의 삶과 닮은 듯해 호기심을 자극했다. 파라노이드 바이러스로 새로운 전염병 사태를 맞은 근미래, 동선 공개 때문에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아웃팅 당한 채 실직하게 된 우식의 사정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그가 세 번째 격리 상황을 맞으면서 우연히 읽게 된 ‘격리 전문가’ 조기준의 회고 서사와 교차된다. 기준은 1983년 산속 안전 가옥에서 일곱 살 때부터 10여년간 격리 생활을 하게 된 남자로, 자신이 주변 존재를 모두 죽일 수 있는 &l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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