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PC업체 현주컴퓨터가 부도 처리된 지 한달도 채 안돼 국내 2위 PC 메이커인 삼보컴퓨터마저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PC업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업계는 삼보컴퓨터가 지난 3월 한때 자본잠식율 50% 초과로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뻔 했던 만큼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선 예견된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위협받고 있는 국내 PC업계 전체로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왜 쓰러졌나 1980년대와 90년대 PC 업계를 주름잡았고 2000년대 초까지 '벤처 신화'란 말을 들었던 삼보컴퓨터와 현주컴퓨터.이 두 업체가 잇따라 쓰러진 원인은 무엇보다 적기에 변신하지 못한 채 무리한 투자를 단행한 데서 찾을 수 있다. 현주는 2001년에야 뒤늦게 노트북PC 사업에 뛰어들어 실패했고 삼보는 초고속인터넷 사업에 진출해 큰 손실을 봤다. 삼보의 2002년 적자 규모는 5000억원에 근접할 정도로 막대했다. 여기에 세계 PC시장이 장기 침체 국면을 맞이하면서 경영 실적이 '깊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됐다. 저수익 사업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도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수출 비중이 60∼70%나 되는 삼보는 수익성 낮은 제조자설계생산(ODM) 위주로 해외 사업을 꾸려왔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중국 저가 PC 메이커들이 부상하면서 가격경쟁력마저 잃기 시작했다. 이에 삼보는 2003년 말부터 자체 브랜드 비중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노트북 브랜드 '에버라텍'과 데스크톱 브랜드 '루온'을 '양 날개'로 내세워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원화 강세에 따른 환차손이 '복병'으로 등장해 휘청거리게 됐고 특히 최근 4개월간 대만 PC 메이커들의 저가 공세로 ODM 매출이 절반으로 급감했다. 이로 인해 지난 1분기에는 매출이 26.1% 감소하고 2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고 결국 '법정관리'라는 초강수 회생책을 선택하게 됐다. ◆회생 가능할까 삼보는 철저히 수익성과 국내사업 위주로 사업을 재편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해외 사업은 점차 정리하고 '에버라텍' 노트북을 중심으로 국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매각을 추진 중인 안산 제1공장은 물론 필요하다면 중국 멕시코 공장 등 해외 자산도 과감히 매각할 계획이다. 삼보는 해외에서는 당분간 어려움을 겪겠지만 국내에서는 25년간 축적한 노하우와 기술력이 있고 전국 유통망이 건재하기 때문에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면 회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영업 적자를 면치 못했던 국내 사업에서 올 1분기에 137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는 데 희망을 갖고 있다. PC업계 한 관계자는 "삼보의 브랜드 인지도는 무시하기 어렵지만 레노버 등 다국적 PC 메이커들이 공세를 강화하면 국내 시장도 치열한 전장이 될 것"이라며 "삼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 품질 서비스 등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일정 삼보컴퓨터가 정상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는 6개월 정도 지나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삼보의 법정관리(회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받은 뒤 1개월 이내에 정리절차 개시 결정을 내린다. 이후 법정관리인을 선임하고 회사 실사를 위한 조사위원을 선임,정밀 실사에 들어간다. 만약 실사 결과 청산 가치가 존속 가치(계속기업가치)보다 높게 나오면 청산 절차로 들어가게 된다. 이에 대해 채권단 관계자들은 "현재로서는 청산 절차로 들어갈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실사 기관이 낸 조사 보고서와 법원이 마련한 채무 조정안이 나오면 채권단은 채무 조정안에 대해 찬반 여부를 결정한다. 여기서 채권단 합의가 이뤄지면 삼보컴퓨터의 법정관리가 최종 확정돼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된다. 장진모·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