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의회에 제출한 환율보고서에서 중국 위안화의 달러 페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핵심인 환율 조작국으로는 지정하지 않은 것은 고도의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위안화 조기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미 의회의 목소리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중국에 6개월이란 마지노선을 제시함으로써 자발적인 위안화 절상을 위한 명분과 시간을 주는 '양다리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월가는 지적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8일 "미국은 1994년 이후 어느 국가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을 바로 대상에 포함시키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통신은 "특히 북핵문제 등 다양한 현안과 관련해 중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인 점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존 스노 미 재무장관도 전날 의회 보고서 제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환율 변동폭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지 당장 완전한 변동환율제 도입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양국간 환율분쟁이 확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전달했다. 미국이 6개월이라는 시한을 정한 것도 '다목적 포석'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시한을 정한 것은 강도 높은 '압박용'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중국 정부가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4대 국유은행(중국·건설·공상·농업은행) 민영화를 위한 시간을 벌어준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의 앤디 시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위안화 환율제 개선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국유은행 민영화 등 금융시스템 개혁을 강조해 왔다"며 "미 재무부 보고서는 중국의 이 같은 입장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 재계와 의회는 미 행정부가 이처럼 수위 조절에 고심한 데 대해 한결같이 불만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늘어나는 대중 무역수지 적자와 이로 인해 지난 3년간 110만명의 일자리가 감소했다는 미국 내 비판여론을 감안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치인 1620억달러로 불어났다. 때문에 위안화 환율을 둘러싼 논란은 오는 10월15일 미 재무부가 하반기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할 때까지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지난주 중국산 면바지와 셔츠 속옷 등에 대해 수입물량을 제한하는 쿼터제 재가동 계획을 밝혀 무역 불균형 문제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할 것임을 시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은 위안화 절상에 상응하는 현실적인 조치들을 중국측에 계속 요구할 것"이라며 "앞으로 섬유분쟁 등에서 양국간 환율분쟁의 대리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