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집행부와 해고자들이 임원실에 들어서더니 가족까지 들먹거리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댔어요.


폭언을 꾸짖자 내 두팔을 엮고 목을 잡아쥐더니 뒷머리를 사무실 벽에다 사정없이 몇 번씩이나 찧는 겁니다.


몇명이 달라붙어 온몸을 쥐어뜯기까지 합디다.


아무리 강성노조라지만…."


19일 서울의 A병원 입원실. 최평규 통일중공업 회장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최 회장은 지난 9일 임원실에 난입한 노조 집행부와 해고자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해 목 디스크 파열 등 전치 6주의 부상을 입고 13일 서울 A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최 회장은 이날 인터뷰 중에도 그날 사태가 악몽처럼 되살아나는 듯 간간이 몸서리를 쳤다.


최 회장의 진료를 맡고 있는 책임교수는 "목 척추 3개 부위(2.3.4번)가 중추신경을 압박하고 있고 외부충격으로 신경이 일부 손상돼 손저림 증상 등이 나타나고 있다"며 "목 척추 수술은 워낙 위험도가 높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집단폭행을 당한 후 창원 한마음병원에 갔다가 이상이 없는 것 같아 바로 회사 사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밤에 손발이 저리기 시작합디다.


다음날 아침 그 병원으로 다시 갔습니다.


담당의사가 서울 큰 병원으로 빨리 가보라고 하더군요.


서울로 긴급 후송된 날 밤 한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 내가 뭘하고 있는 건지…."


지난 80년대 초 설립한 ㈜삼영을 알토란같이 성장시키고 2003년 법정관리 중이던 통일중공업을 인수해 만성 적자기업에서 흑자기업으로 전환시킨 최 회장.


그는 통일중공업을 정상화시키면서 분규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이 회사 노조를 끌어안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자신의 월급과 법인카드를 반납한 것은 물론 개인돈으로 사원들에게 격려금까지 지급하기도 했다.


전 사원에게 1만주씩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등 '최평규식 경영'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런 까닭에 노조의 집단폭행은 충격이었다.


다른 회사처럼 노조와 적당히 타협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최 회장은 허탈하게 웃었다.



"노조는 한 번 부당한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더 달라고 합니다.


15년 근무하다가 이번에 무단결근으로 해고된 근로자들의 경우 사규를 정확히 적용하면 퇴직금이 8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줄어듭니다.


하지만 차마 그러진 못하겠습디다.


회사가 그동안의 노고를 감안해 8000만원을 다 채워 주기로 했지요.


그런데도 돌아오는 것은 폭력뿐이었습니다."


그는 현재 노동계의 '투쟁'은 법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한다.


"창원공단이요? 노조에 폭행당했다고 병원에 가도 진단서 하나 제대로 발급받지 못할 정도입니다.


진단서 길게 끊어주면 노조가 들이닥쳐 다 때려부수니까요.


경찰서 앞에서도 노조원들이 버젓이 불법으로 천막 치고 농성합니다."


최 회장은 해고자 복직문제에 대한 노동부와 지방노동위원회의 엇박자에도 한숨을 푹푹 쉬었다.


최 회장은 인터뷰 중간중간 말 못할 고민과 하소연을 토로했으나 다행스럽게도 희망의 실마리는 잡고 있었다.


통일중공업을 인수한 일과 그동안 쏟아부은 애정이 후회스럽고 아깝지 않으냐고 하자 "노(NO)"라고 잘라 말했다.


"통일중공업을 포기할 순 없어요.보란 듯이 회사를 정상화시킬 겁니다.


제가 희생할 겁니다.


사원들 1300여명에,그 가족까지 5000여명이 통일중공업에 밥줄을 걸고 있어요.


제 사욕을 채우겠다는 게 아닙니다.


다 같이 살아야지요."


최 회장이 말하는 희망의 원천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사원들이요,대다수 선량한 노조원들이었다.


"도무지 변하지 않으려는 100명 정도의 노조원 빼고는 모두 열심히 해보겠다는 사원들,노조원들이지요.


지난 3일 금속노조 총파업 때 통일중공업 노조원 중에서는 불과 60여명만 참가했습니다.


대다수는 생산현장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합니다.


희망을 걸 만하지 않습니까.


4분기 연속 영업흑자도 냈으니 말이지요."


최 회장은 강성노조의 벽에 번번이 부딪치면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통일중공업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최근 국방부 개발프로젝트로 350억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회사를 성장시켜 국가에 보답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몸이 완쾌되면 당장 창원공장으로 달려갈 겁니다.


노조와도 대화를 할 겁니다.


다시 시작해 봐야지요."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