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의류제품을 수입판매하는 무역업자 K씨. 일부 수입물품 신고 누락으로 2억여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고 출국까지 금지돼 생업을 이어가기가 막막해졌다. K씨는"출국금지를 시켜 생업까지 원천봉쇄한다면 어떻게 돈을 벌어 나머지 추징금을 모두 납부하느냐"고 하소연했다. K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한 무역업자가'추징금을 미납할 경우 출국금지조치 할 수 있다'고 규정한 출입국 관리법 제 4조1항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기해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28일 헌법재판소가 합헌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그 희망마저 사라졌다. 대법원이 지난달 30일 대우그룹 분식회계사건 상고심 재판에서 강병호 전 대우 사장 등 전직 임원 6명에게 사법사상 최고액인 23조원의 추징금을 선고한 것을 계기로 '추징금'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추징금 액수가 개인이 도저히 갚을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의 뇌물수수나 부정축재,마약사범과 같은 반사회적 범죄에 대한 강력한 추징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분식회계처럼 관행에서 비롯된 일부 경제범죄까지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추징은 상속재산은 물론 월급의 절반까지 압류할 수 있어 당사자들은 사실상 파산이 불가피하다. 물론 3년이란 시한이 있기는 하지만,단 1원이라도 새롭게 추징되는 시점에서 시한이 연장된다. 이 때문에 '무한추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대기업 법무팀장은 "길게는 10년을 넘기며 추징이 집행되기도 한다"며 "'깃털'에 불과한 대우그룹 임원들에게 23조원의 연대책임을 지우는 것은 법리에만 치우친 판결"이라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사실상 구제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징역형과 달리 사면혜택이 없다. 이 때문에 지난 석가탄신일 사면에서 대우 분식회계 연루자들은 심사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추징금을 집행하는 검찰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추징금을 선고하고도 집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부과되는 추징금과 미추징금액을 합친 누적추징금액은 지난 2001년 1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532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실제 검찰이 추징하는 금액은 매년 전체 누적추징금액의 2∼4%에 불과한 수백억원선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에도 총 부과액(전년도 이월분 포함) 1조5323억원 중 567억9300여만원만 추징됐다. 추징금 징수를 맡고 있는 검찰 관계자는 "형 확정 이전에 미리 압류할 수 없어 재산을 빼돌리는 사례가 많다"며 "납부 거부할 경우 노역장 유치 같은 신체형 등으로 환형할 수 없다는 점도 현실적 제약"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이상돈 교수는 "(분식회계가 만연했던) 당시의 불법행위가 일부 사회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배제한 채 모두 특정 개인의 책임으로만 묻는 것은 형평과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며 "공범에게 무한연대 책임을 지운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