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을 '공식화'하는 것이 무리라는 주장을 펼친 것도 이번 회담의 '급(級)'으로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깔고 있다. 결국 양측은 이번 회담을 장관급 회담 등을 열기 위한 '가교'역할로 규정하면서 절충점에 도달했다. 장관급 회담을 내달 중 재개하고 지난해 7월 이후 중단된 장성급 군사회담과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을 조만간 열기로 하는 등 분야별 협의체제를 복원시키는 것에 합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측 수석대표인 이봉조 통일부 차관이 이날 남북회담 사무국을 출발하기에 앞서 "최우선 과제는 남북관계 정상화"라고 밝힌 것도 이번 회담의 한계를 일정부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 중단된 정치 경제 군사 등 분야별 대화 협의체를 재가동하는 발판을 마련한 이번 회담의 성과는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북핵문제에 대해 북한이 남북교류와는 별개 사안으로 남북대화의 의제 자체로도 인정하지 않았던 기존 입장에서 크게 양보,우리 정부의 입장을 경청한 것도 향후 장관급 회담에서 북핵문제와 관련된 논의의 '밀도'가 높아질 것임을 예측하는 대목이다. 이 차관이 마지막 날 회담 출발에 앞서 "핵문제는 이미 충분히 얘기가 됐다"고 말한 점도 북한의 이러한 입장 후퇴를 받아들여 합의문 과정에서 탄력적인 입장을 보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전향적인 발전은 내달 중 열릴 장관급 회담의 성공여부로 넘어가게 됐다. 장관급 회담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해 나가는 중심협의체이며 남북한 현안을 그야말로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남북 간 대화의 핵심 틀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발판을 마련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