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현 < 한국품질재단 대표 > 품질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30~40년대 대량생산 방식이 도입되면서였다. 이를 계기로 통계 원리를 이용한 각종 품질관리 기법이 탄생했다. 2차대전 이후에는 미국 데밍 박사의 가르침을 받은 일본이 끊임없는 개선을 추구하는 품질혁신 기법을 창안,1970~80년대의 '품질 일본'을 일궈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생산자 중심의 품질'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생산자 중심 품질 개념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상품에 자국 시장을 내주고 자긍심마저 손상당한 미국은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강하게 느끼게 됐다. 이에 그들은 국가품질상 제도를 만들어 품질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하게 된다. 고객에게 개선된 가치를 제공해야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으며, 이것이 기업의 전반적인 성과와 가치를 개선시킨다는 '소비자 중심의 품질' 개념이 만들어졌다. 1990년대 들면서 고객의 개념은 이해관계자로 확대되고 품질과 경영을 동일선상에서 다루면서 사회적 책임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제 이 개념은 세계 시장의 글로벌화와 맞물리면서 환경, 노동, 윤리, 신뢰와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경영의 중심에 두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품질 개념의 지평을 국제사회의 시각으로 확대했다는 의미에서 '글로벌 품질'이라고 한다. 이런 변화로 말미암아 기업은 이제 새로운 품질경영 전략을 준비하지 않으면 시장접근 자체를 차단당할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글로벌 품질은 각국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국제기구가 협력하여 합의표준을 만드는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이 표준이 요구하는 품질은 기존 생산자중심 또는 소비자중심 품질 시대의 기법이나 관리 방법만으로는 충족시키기 어렵고, 경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해결할 수 있다. 글로벌 품질 표준은 우선 이해관계자의 니즈와 기대치가 경영 전략의 중심 목표에 있는지, 절차와 시스템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되고 있는지, 또 그 과정의 투명성이 유지되고 있는지를 요구한다. 유엔환경계획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기업환경책임그룹이 공동으로 설립한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가 내놓은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기업이 경제성 사회성 환경성에 대한 전략과 결과를 전문 검증기관으로부터 인증받아 발표할 것을 가이드 라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글로벌 품질 표준은 국제기구는 물론 각국 중앙 및 지방정부,소비자,투자자,비정부기구 등 많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감시와 평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품질은 경영 성과와는 무관하게 기업의 존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국제기구들은 일방적으로 몰아세우지는 않는다. 대응할 수 있는 시간과 지침을 우선 제시하고 변화를 기다린다. 하지만 이미 많은 선진국들은 초우량 경영 개념의 틀 속에서 조직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미국의 말콤볼드리지상, 유럽연합의 유럽품질경영상, 우리나라의 신품질상 등은 이런 조직 경영의 발전 로드맵을 갖고 있다. 이 로드맵들은 ISO9001 품질경영시스템과 ISO9004 성과 지침,초우량 경영으로 이어지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조직(기업)경영 발전모델은 ISO9001을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직 경영의 전략 도구로 삼고 있다. 현재 ISO9001의 가치에 대해 국내 산업계에서 일고 있는 비판은 이 표준이 추구하는 원칙을 무시한 운영에 관한 것이지 본질을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는 지속가능한 개발 개념을 경영활동에 정착시키는 것이 기업이 추구하여야 할 궁극적 목표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실현할 방법론으로 ISO9001→ISO9004→초우량 경영의 실현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을 강조한다. 이제 그 출발점에 서 있는 ISO9001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를 다시 다듬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