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윤석 <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 > 최근 화제를 모았던 영화 '말아톤'에서 장애인인 주인공 초원이의 어머니와 마라톤 코치 간에 설전 장면이 나온다. 코치는 "마라톤을 할 수 있을지 분석도 없이 무조건 시키면 심장이 터져버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마라톤을 좋아하니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초원이는 마라톤을 하게 되고 풀코스를 완주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마라톤을 시키면 위험할 수 있다는 코치의 지적이다. 정부정책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위한 일도 이를 감당할 경제적 체력(Infrastructure)이 없다면 추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근 발표된 '2005∼200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둘러싸고 성장이냐,분배냐의 논쟁이 일고 있다. 정부는 소외층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복지 예산을 늘리고 이를 통해 동반 성장을 이루겠다고 주장했다. 이를 단순히 성장과 분배로만 구분짓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많다. 다만 분명히 짚을 것은 과연 우리경제가 분배를 우선할 만큼 성장잠재력이 갖춰졌느냐는 점이다.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1분기 성장률을 당초 예상치인 5%에 못 미치는 3% 정도로 예측했다. 최근에는 유가 상승과 환율 불안에 북핵 위기,위안화 절상 가능성 등 대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수출 증가세마저 둔화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성장 동력의 바탕인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연구개발(R&D),정보화 등의 투자 재정을 축소하는 것은 정부재정 투자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정부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선진국형 사회 진입을 위해 국방·복지 지출을 연 9% 이상 늘리면서 고용창출과 내수진작 효과가 엄청난 SOC 투자 증가율을 예산 증가율(6.6%)보다 낮은 1.6% 이내로 억제했다. 이는 사실 국가 경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기초체력 보강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 나아가 지금껏 쌓아놓은 곶감만 빼먹겠다는 사고방식이다. 곶감을 나눠주기보다 곶감 만드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낫다. 따라서 SOC 투자 축소는 반드시 재검토돼야 한다. 이뿐 아니라 1971∼2002년 연 평균 증가율이 28.3%였던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분야 연구개발비도 향후 5개년간 8∼9% 선으로 하향 조정한 것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정보기술 강국이 된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지난 80년대부터 과감한 투자를 통해 기초 인프라를 충실히 다져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 추진 중인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의 범국가적 국토균형발전사업도 충분한 기초 인프라 없이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을 정부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