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한 후 귀국길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한 우이(吳儀) 부총리가 중국인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국제 예의상 생각할 수 없는 일'이란 일본측 비난과는 기본적으로 맥을 달리한다.


오히려 '잘못된 역사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에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정서가 중국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우 부총리가 중국 정부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 취소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근성과 배짱이 주목받고 있다.


전부터 그는 '중국의 대처'나 '철낭자'로 불리었다.


1938년 후베이(湖北) 성 우한(武漢)에서 태어난 우 부총리는 62년 베이징석유학원을 졸업했다.


그 뒤 26년간 석유화학회사에서 근무하다 베이징 부시장이 되면서 정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그는 중국 정계에서 여걸로 통한다.


90년대 미국 무역대표부(USTR) 칼라 힐스 대표와의 담판에서 '미국의 여걸'이었던 힐스가 중국 내 불법복제 문제를 물고 늘어지며 '좀도둑'이란 표현을 하자 그는 "미국은 과거 중국의 유물을 강탈해간 '날강도'가 아니냐"고 맞대응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장쩌민(江澤民)이나 주룽지(朱鎔基) 등 당시 중국 최고 수뇌부의 애정어린 지원을 이끌어내면서 정계에서 급성장했다.


독신인 우 부총리는 과거 쑨원(孫文)의 부인 쑹칭링(宋慶齡),마오쩌둥(毛澤東) 부인 장칭(江靑),저우언라이(周恩來) 부인 덩잉차오(鄧潁超) 등 중국의 여걸들과 달리 실력자 남편의 후광 없이 당당하게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