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세계적인 응용기술 연구소 프라운호퍼의 한국 기지인 한독기술협력센터는 요즘 차세대 자동차 엔진용 플라즈마(수만도 이상 고온에서 만들어지는 액체 기체 고체도 아닌 제4의 물질) 코팅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이는 엔진 태핏(Tappet)의 마모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기술로 국내 A사가 연구·개발(R&D)을 의뢰한 것이다. 한독기술협력센터는 독일 본사 자동차기술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9월 말쯤 완료할 예정이다. 이 기술이 개발되면 지식재산권은 A사와 프라운호퍼가 공동 소유하게 되고 A사는 독점적인 사용권을 갖는다. 기술료는 매출의 일정액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알려졌다. 프라운호퍼는 MP3 레이저디스크 등을 개발한 연구소로 지난 2000년 서울에 센터를 세운 이후 국내 기업들의 R&D 대행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 분소를 연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는 국내 B사로부터 바이오 관련 프로젝트를 의뢰받아 올 가을께부터 본격 연구에 들어간다. 파스퇴르는 정보기술(IT) 기반의 바이오연구에 대한 장점을 내세워 관련 기술을 개발키로 했다. 양측은 아직 기술료에 대한 계약을 맺지는 않았지만 매출의 일정액을 로열티로 받는 조건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도 이처럼 핵심적인 R&D분야를 외부 전문 연구기관에 맡겨 아웃소싱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춰 R&D 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외국 연구기관들이 잇달아 한국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 기업 부설 연구소들도 기업 R&D 대행 기관으로 바꿀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국내 R&D 아웃소싱 시장은 오는 2015년께 10조원대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문 연구기관의 시장 참여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국내 전체 R&D 투자는 올해 중 2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매년 약 10%의 증가세를 보여 2015년께 5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R&D의 50% 이상을 외부 기관에 맡기는 기업이 상당수에 달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에서도 이 같은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바텔연구소와 일본 리켄연구소도 국내 R&D 대행 시장에 곧 참여할 예정이다. 국내 연구기관 가운데서는 녹십자의 비영리 연구법인 목암생명공학연구센터가 제대혈은행 등을 운영하면서 생명공학 연구에 필요한 탯줄 내 세포 등을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고 정부 프로젝트 위탁연구도 수행 중이다. 포스코가 운영하는 산업과학기술연구소는 포스코 이외 기업들로부터 연구를 위탁받는 전문 연구소로 기업의 목표를 바꾸기로 하고 구체적인 작업에 나섰다. 산기연은 특히 부품 소재 관련 첨단 설비나 장비 등을 서비스하는 사업들을 적극 전개할 방침이다. 삼성SDS는 기존 IT서비스 사업부에 '엔지니어링 아웃소싱'(EO)을 전문으로 하는 사업단을 신설했다. 한편 대학도 신설 연구센터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기업 연구용역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최근 세운 나노팹 시설을 기업들에 임대하고 원하는 기업에 연구용역을 제공하기로 했다. 엄미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적으로 기업의 R&D 부담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를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는 것이 새로운 추세가 되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관련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