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 간 환율 분쟁은 이미 경제 쟁점을 넘어 양국 간 정치적 파워 게임으로 변질되고 있는 분위기다. 환율 분쟁의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섬유분쟁에서 이를 확인하게 된다. 보시라이 중국 상무부장(장관)은 지난 16일 토머스 도나휴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을 접견하면서 미국의 중국산 섬유수입 규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보여줬다. 대화 내용은 이날 저녁 상무부 웹사이트에 올려졌다. 그 가운데 보 부장의 "자발적인 수출 제한은 하지 않겠다"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지난 11일 원자바오 총리가 유럽연합(EU) 관리들을 만나 "추가적인 수출억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발언과 궤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특히 보 부장은 "섬유무역 자유화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 누리는 권리이기 때문에 스스로 수출을 제한하지 않겠다"고 이유까지 설명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20일 중국 정부는 6월부터 74종의 섬유제품에 대해 수출관세를 추가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보 부장은 정치적인 발언을 통해 강한 불만을 내비쳤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환율 분쟁을 정치 문제로 접근하는 건 이 뿐만이 아니다. 원자바오 총리의 "외부의 압력에 굴복해 환율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중국의 전문가들은 "환율을 감정적으로 처리한다는 인상을 준다"며 "국민들에게 우리는 대국이기 때문에 굴복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환율 분쟁이 체면을 따지는 정치문제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의 책임도 크다. 미국 정부의 위안화 절상 압박이 순수 경제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는 미국 노동자를 의식한 정치권의 요구에 떠밀린 측면이 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미국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지난 20일 "위안화 절상이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에 도움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일을 꼬이게 할 뿐이다. 위안화 환율 전망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