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도 장기투자 한다.. 투자은행 영역 '야금야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고수익을 좇아 단기 투자를 일삼던 헤지펀드들이 기업 인수합병(M&A)이나 기업 대출 등 장기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최근 수익률 하락으로 단기 투자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헤지펀드들이 투자 전략을 새롭게 짜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 최신호 역시 "전세계적으로 8000여개의 헤지펀드들이 난립,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면서 자산운용 등에 여유를 갖고 있는 헤지펀드들이 새로운 생존법을 찾아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장기 투자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의 스포츠 재벌 말콤 글레이저가 최근 영국의 명문 축구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하는 데 투입한 5억달러는 투자은행이 아닌 헤지펀드에서 나왔다. 시타델인베스트먼트,페리캐피털,오츠지프캐피털매니지먼트 등 3개 헤지펀드가 인수대금을 투자했다.
미국 항공사 US에어웨이즈와 아메리칸웨스트가 지난주 합병 계획을 발표했을 때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다른 측면에서 다시 한번 놀랐다. 합병에 필요한 15억달러의 비용 중 3억5000만달러를 PAR인베스트먼트,펜실베이니아인베스트먼트 등 2개 헤지펀드가 제공했기 때문이다. 도넛 업체인 크리스피 크리미가 지난 4월 채권은행들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렸을 때 40억달러를 긴급 대출해준 곳도 '실버포인트'라는 헤지펀드였다.
골드만삭스의 로버트 스틸 전 부회장은 "주식·채권·외환·원자재 시장 등에서 단기 차익만을 챙겼던 헤지펀드들이 이제는 기업구조조정 등 장기적으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헤지펀드,투자은행에 '도전장'
헤지펀드가 월가 투자은행들의 사업영역을 야금야금 빼앗아 들어가면서 이들 간에 금융시장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대형 헤지펀드들은 M&A 자금대출 등 투자은행의 고유영역까지 잠식하고 있어 투자은행들의 '으뜸 고객'에서 '무서운 경쟁자'로 변모하고 있다.
헤지펀드들은 차입금을 적극 활용하기 때문에 투자은행들보다 3~4배 더 많은 자금을 단기간에 동원할 수 있다. 이 과정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고수익을 노린 투자은행들의 대출자금도 포함돼 있다. 은행들이 경쟁자인 헤지펀드에 자금을 대주고 있는 꼴이다.
헤지펀드들은 투자분석업무를 수행하는 '리서치 기능'은 없지만 금융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펀드매니저들을 보유하고 있어 투자은행의 자산운용 성과를 능가하는 경우도 많다.
일부에선 헤지펀드의 사업영역 확대에 우려를 표시하기도 한다. WSJ은 "헤지펀드는 태생적으로 '대출'이 아니라 '거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돈을 빌린 기업은 언제든지 적대적 M&A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