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1: 1998년 11월18일 금강산 관광객 첫 입북.찢어진 청바지 입고 나선 남한 관광객,북한 안내 선생 눈에 발견."동무!바지에 자유주의가 만개했구랴.당장 치우라요!" 기록2: 2001년 6월4일 평양 옥류동 청년문화회관.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 '민족옷 전시회' 개최.기녀복 차림 여성모델이 선비복장 남성모델 유혹하는 워킹,북측 제제로 무산.노출심한 옷 여섯 벌도 불허.이유는 '전통 윤리 부적합'. 기록3: 2005년 5월27일 황해도 개성공단.신원 '피복전시회(패션쇼)' 개최.민소매 원피스,초미니 스커트,청바지 차림 모델,스테이지 활보.남ㆍ녀모델간 어깨동무ㆍ하이파이브 연출 무사 통과. 지난 27일 의류업체 신원의 개성공장에서 열린 패션쇼 현장은 서서히 변해가는 북한의 모습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자본주의'의 대표 상징인 청바지를 금기시하고 야한 옷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제한하던 이전 관행에 비춰보면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이날 패션쇼에서 파격적인 수위까지 노출이 허용됐던 것은 이영희 패션쇼 때와 달리 행사 관람객(500여명) 거의가 남한에서 신원의 개성공장 준공을 축하하러 건너간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조선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관리 7명이 형식상 참석했을 뿐 일반 주민은 커녕 공장 근로자들조차 단 한명도 자리하지 못했다. 단지 굳게 닫힌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행사장 밖에서 '민족옷'(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묵묵히 안내를 맡은 게 전부였다. 남과 북이 한데 모여있었지만 패션쇼장 안과 밖을 가르는 '벽'은 너무도 두꺼웠다. 어디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을까.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개성공단 시범단지까지 이르는 불과 7㎞구간이 포장되는데만 근 2년이 걸렸단다. 개성공단 개발을 위해 첫 삽을 뜰 때만 해도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오가며 공장터를 일궜을 터.앞으로 또 2년뒤엔 공단 입구까지 근사하게 포장돼있는 4차선 도로처럼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벽도 조금은 더 얇아져있길 기대해본다. 개성=이방실 생활경제부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