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화수분 재정지출, 누구의 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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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
2001년 초 미국의 의회예산처(CBO)는 향후 10년간 5조6000억달러의 재정잉여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예측치를 토대로 부시 대통령은 거대한 조세감면을 실시했다.
미국의 금융시장에서는 장차 정부부채가 모두 상환돼 '재무부채권 없는 세상'(life without Treasury bonds)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얼마나 짧았던 장밋빛 꿈이었던가! 클린턴 시대에 쌓은 거대한 재정잉여는 부시 4년간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똑같은 CBO가 2004년 9월에는 향후 10년간 2조3000억달러의 재정적자 발생을 예고했다.
그런데 이 수치도 3년 전 예측된 거대한 흑자만큼이나 낙관적인 숫자라고 조롱받았다.
전문가들의 적자 예상치는 5조~6조달러에 이르렀고, 오늘날 미국이 연 4000억~5000억달러 재정적자를 발생시키는 것은 뉴스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작년 말 기준으로 203조원이 넘어섰다.
1997년 60조원에서 지난 8년간 3배 넘게 늘어난 것이며, 참여정부는 2년 만에 70조원을 증가시켰다.
당국자들은 그러나 우려할 수준이 아니니 안심하라고 한다.
우리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26.1%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6.8%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재정을 무한정 풀어 만사를 해결하는 것이 참여정부의 철학이 된 모양이다.
금년 1분기만 해도 통합재정수지가 5조1000억원의 기록적인 적자를 보였는데 상식적인 정부라면 우선 씀씀이를 경계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에서는 '적자폭을 더욱 늘리자!'는 논법이 나왔다.
경기가 부진해서 적자가 난 것이니 하반기에 적자폭을 더욱 늘려서 경기를 부양시켜 적자재정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당정은 이에 따라 월초 현재 GDP ±1%내로 제한돼 있는 경기조절용 재정운영폭을 GDP ±2%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들은 이제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예산적자를 늘릴 수 있게 됐고, 남은 절차는 추경예산 편성뿐이다.
이것은 금년 내년의 일이 아니고 다음 정권까지 계속되는 여당의 장기 국가재정 운영 복안이다.
여당은 적자재정정책을 통해 연간 5%대 경제성장과 40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달성할 것이며,그 경기유발효과를 보아 2009년쯤 균형재정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런 주먹구구가 통한다면 세상에 경기부진과 적자재정에 허덕일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정부 여당은 수많은 기업,자영업자들이 왜 살을 베어내는 고통으로 구조조정을 하는지 과연 한번이라도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지 모르겠다.
최근 늘어나는 계산서는 오히려 경기회복, 성장과 무관한 것이다.
향후 20년간 자주국방 비용이 209조원, 농어촌 지원으로 10년간 119조원, 새 행정수도와 20여개의 신도시를 만들고 공공기관 177개를 옮기는 데는 얼마가 들어갈지 모른다.
수많은 국가사업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표류중이고 선심성 예산지출,조세감면,로드맵,혁신사업 등은 부지기수로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북한의 국토개발까지 손을 대 이른바 'N 프로젝트'가 거론되고 있다.
한국에 복지시스템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 없지만, 그것이 얼마나 급속 방대하게 불어날 지는 신(神)만이 알 일이다.
김근태 장관은 "우리 복지제도는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체돼 있다"고 평가하고, "빠른 시일 내에 복지예산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화수분이 이 모두를 당할 것인가.
작년과 금년 늘어난 재정지출요인은 과연 꼭 필요했던 것인가.
우리의 국가채무는 정말 그렇게 안심할 만하고,그렇다면 마구 다 써버려야 하는가.
세상일이란 욕심나는 대로 다할 수 없기에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다.
특히 국가는 친목회처럼 오늘만 먹고 해산할 수가 없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누가 쌓은 것인가.
그 건전성을 5년의 통치만 위임받은 정권이 무슨 권리로 모두 허물어 탕진하는가.
현 정권의 절제 없는 씀씀이 앞에서는 어떤 재정건전성도 여름 뙤약볕에 얼음 녹듯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