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요 IT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느끼고 있는 위기감은 '실제 상황'이다. 지난해 최고의 실적을 거둔 뒤 위기의식을 외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당시는 초일류기업으로의 안정적인 도약을 위한 정신무장 차원이었지만 지금은 실적 악화 추이가 속속 눈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의 추가 하락과 내수시장의 '더블 딥(경기가 잠시 회복세를 보이다가 다시 나빠지는 이중침체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난 26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주재로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사업전략회의에서도 이 같은 기류는 확연하게 나타났다. 참석한 사장들의 표정은 어둡고 침울했다. 지난 1분기에 좋은 실적을 내지 못했던 디지털미디어와 생활가전 사업,LCD 총괄사업 담당 사장들은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시장여건이 1분기보다 나아지기는커녕 일본 대만 중국업계의 견제와 도전이 더욱 거세지고 있어서다. 유럽지역 수출확대를 통해 환율 하락에 따른 기회손실을 만회하려는 전략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서유럽 지역의 경제가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전 세계 모든 IT기업들이 유럽시장을 전략적으로 공략하고 나서면서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모 사장은 "후발업체들이 디지털 기술 격차를 좁혀오는 속도가 워낙 빨라져 선발업체의 프리미엄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며 "책상에 앉아 있는 영업담당 임원들에게 매일 호통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